아이들과 새들의 놀이터, 배움터

풀씨학교, 볍씨학교의 평화가 위태롭다!


풀씨학교는 광명YMCA가 만들어지던 1994년부터 시작된 유아교육기관이다. 현재까지 풀씨를 졸업한 아이들의 수는 줄잡아 이천명에 이른다. 일 이년 머물다간 아이들까지 넣으면 삼천명도 훨씬 넘어설 것이다.

볍씨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대안초등학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해마다 한 학년씩 늘어나 현재는 9학년까지 96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볍씨는 올해 열 살이다.

2001년 학교를 처음 열 때는 달랑 교실 한칸으로 시작했다.

2001년 3월 10일,

열두명의 아이들이 입학식 사회를 보고 안내도 맡았다. 나는 그날 입학식에 참여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대안초등학교라는 역사적 의미 보다는 첫 입학하는 아이들이 안내를 맡아 어른들을 맞이하고 사회를 보기도 하고 축하공연을 스스로 하는 것이 더욱 더 특별하면서도 역사적 의미를 음미했었다.

지금도 볍씨 입학식에 처음 온 어른들은 정신없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저학년 아이들이 진행을 맡아서 하다 보니 어설픈 모양이 많다. 하지만 입학식 뿐 아니다. 부모주최가 아닌 학교행사는 대부분 아이들이 준비하고 진행한다. 아이들을 주도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성장하게 만드는 배움의 장으로 행사 또한 한몫 단단히 하는 걸 알기에 세련된 보여줌 보다는 어설프고 산만한 진행을 택한다.


  풀씨학교, 볍씨학교는 시설이 열악하다. 번듯한 건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자람과 배움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기운은 자연에서 온다. 양옆에 자리한 작은 숲과 밭, 운동장, 앞마당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석구석의 나무밑이나 나뭇가지 위거나 모두 자연의 너른 품이다.

  이곳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곳이 아니다. 숲이 아주 크지 않음에도 수많은 새들이 날아온다. 참새, 동고비, 멧새, 박새, 멧새, 까치, 딱새, 멧비둘기 등 흔히 볼 수 있는 새 말고도 백로, 종달새, 꿩, 후투티, 뻐꾸기, 딱따구리, 심지어 제비들도 봄만 되면 힘찬 날개짓을 하며서 이곳 하늘에서 춤춘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 부부가 날아다니고 있다.


  아침나절 풀씨아이들이 숲에서, 운동장에서 앞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5분만 지켜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곳임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 아이들임을 알게 된다. 또한 밭에 나가 밤새 싹이 올라왔는지 들여다 보고 물을 길어다 주면서 자신들이 심은 씨앗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 볍씨 아이들의 모습을 보거나 각자 맡은 청소지기, 물지기, 밥지기 일을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 볍씨 아이들을 만나면 ‘평화롭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저 물이 흐르면 주변에 무수한 생명들이 제 본성대로 꽃피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듯 이곳의 공간이 아이들을 제각각 꽃피어나게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제 손톱만한 꽃을 그리겠다고 연필과 공책을 든 아이들에게 아침햇살이 비추일 때 그 순간의 평화는 아무도 깨뜨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평화가 깨질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 4월 1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3차 보금자리지구에 풀씨, 볍씨학교가 들어가게 되었다. 저렴한 서민주택을 대량으로 지어 서민들에게 공급하겠다는 보금자리주택정책의 바람이 이곳 광명시 옥길동에 태풍을 몰고 온 것이다. 사실 주변시세의 70%라고 하나 평당분양가가 천만원이 훨씬 웃도는지라 집없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라는 명분과 집이 없어서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서민들 사이에는 명분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도 크다. 그럼에도 서민들에게, 저렴한 주택공급, 집값 안정과 같은 명분 때문인지 언론에서도 보금자리주택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1차지구의 보상이 시작되기 전에 2차를 발표하고 2차지구에서는 원주민들이 보상을 위한 측량과 실사조차 거부하고 있음에도 3차를 발표했다.

  이제 예정대로 3차지구가 완공되고 나면 광명시는 도덕산, 구름산, 서독산만이 위태롭게 남을 것이고 오직 아파트와 상가들로 옥길동에서 목감동에 이르는 너른 들을 빼곡히 채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풀씨볍씨는 갈 곳이 없게 된다. 지금 국토해양부에서는 보상 받고 조성원가로 구입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상 받는 돈과 조성원가 사이에는 3배이상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50억원이 더 있어야만 현재 아이들이 쓰고 있는 천여평의 땅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50억이란 돈은 누군가는 별것 아닌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천문학적 숫자다. 아직도 부모들은 전세살이에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50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것인가? 11년전 이 땅을 살 때 한사람이 한평씩, 두평씩 사서 마련한 땅으로 그 한평, 한평 마다에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어떤 이는 부업을 해야만 했고 누군가는 적금을 부었고 교사들은 일년치 상여금을 다 쏟아부었어야만 했다. 이곳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10년동안 매일매일 배움이 일어나고 관계가 만들어지고 생활을 배우는 학교가 아파트가 지어지기 때문에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며칠 전 축제장소에서 만난 광명시장이 도시화가 되면 땅값이 올라가니 오른 땅 값을 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라고 하면서 상식이 없는 사람이들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이 상식인가? 아이들 이백명의 아이들이 배움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학교를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쫓겨나야 하는 상황 앞에서 상식 운운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학교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정직한 모습일 수 있다’고 했던 제롬 부르너의 말처럼 이곳 옥길동 72-2번지 일대에서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은 매순간 진실하게 살고자 했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려고 애써왔다. 그 모든 것을 포크레인의 삽날에 덤프트럭의 바퀴자국속에 묻어 두고 떠날 수는 없다. 우리는 지켜내야만 한다. 그것은 학교가 아닌 우리 아이들의 삶이고 곧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소중하게 지켜 온 것은 풀씨학교, 볍씨학교가 아닌 생명이 소중한 세상이고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기에 지켜야만 한다.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