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 칼럼]“내딸 대신 나를 겁탈하라”(윤장현 2009.08.06)
출처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sid=E&tid=8&nnum=488735
2009-08-06 오후 12:46:11 게재 |
“내딸 대신 나를 겁탈하라” 윤장현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작년에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한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름다운 코코넛 야자수가 끝없이 펼쳐진 이 지역은 대대로 땅을 일구고 살아온 불가촉천민들의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에 다국적 기업이 공장을 짓기로 하고 원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는 정책이 진행 중이었다. 적절한 생계대책도 없이 고향을 떠나라는 지방정부의 행태에 주민들은 버티며 저항하다가 급기야 군대가 출동하여 마을을 포위하고, 전기를 끊고, 수도꼭지를 잠궈 버렸다. 소위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듣는 단전단수를 시행한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버티던 주민들 중에서 어린이들이 먼저 마을 밖으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군인들 중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어린 소녀를 겁탈한 것이다. 바로 다음날 대여섯 명의 어머니들이 군부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내 딸들 대신에 우리들을 겁탈하라!” 발가벗은 몸으로 말이다. 평소에는 사리로 온몸을 휘감아 극도로 신체의 노출을 꺼리는 인도의 어미들이 혀를 깨물고 벌인 저항이었다. 민주주의 이룬 환상의 나라 이 일은 곧바로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 인권위원회에 긴급구조 요청으로 접수됐다. 담당 실무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사건의 상황개요를 작성, 세계 각국 유력 언론사와 국제인권기구에 알렸다. 아울러 인도 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금년 2월 아시아인권위 이사회에서 모두가 눈물을 흘렸던 사례다. 6년 전 일이다. 스리랑카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한국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해서 비자발급을 받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동양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섬나라 스리랑카에서는 내전과 군부독재로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고문받고, 살해되고,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광주의 시민연대가 중심이 되어 실종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과 기억의 벽을 조성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이 활동은 실종자 가족모임 결성에 큰 계기가 되었고 이제는 ‘국가인권의 날’을 제정하고 수천명씩 독재정부에 항의시위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 단계는 고문피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반인륜적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고등법원에서 고문피해자의 증언을 듣겠다고 날짜가 잡혀 있는데, 바로 전날 증인이 총을 맞고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두번째 증인도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사람에게 비자를 받도록 해주어 한국으로 피할 수 있게 해 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자기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왜 한국을 생각할까? 아시아의 제3세계들이 바라볼 때 한국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지만 권위주의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이룩한 환상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처럼 수천년의 절대왕정, 수십년의 식민통치, 해방, 내전, 군부독재, 절대빈곤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거쳐왔는데 유독 한국이라는 나라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장 바실페르난도는 스리랑카 사람이다. 그는 킬링필드 참사가 끝나고 캄보디아가 유엔신탁 통치하에 있을 때 유엔 법률책임자로 근무했던 고위관료였다. 지금은 고액의 연봉과 지위를 버리고 아시아지역 인권 향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십여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고는 이내 깊은 상념에 잠겨 이렇게 말한다. “닥터 윤, 한국의 현대사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교과서입니다.” 쌍용차 가족의 울부짖는 얼굴 그는 아시아 다른 나라를 다닐 때마다 목이 쉬도록 외친다. “코리아를 보라!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절대 절망해서는 안된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알리는 전도사다. 그런 그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등급을 하향하는 서신을 보내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쌍용차 사태를 보라. 단전단수라는 말에 다시 인도 케랄라주 이야기가 떠오른다. 헬기가 유독한 최루가스를 뿌리며 압박해가는 어둡고 포위된 공간, 그 안에서 목말라하고 있을 사람들. 그들에게 한통의 물을 전하고자 울부짖는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눈물을 지울 수 없다.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