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재개발 대란 온다"…이주대상 가구 10만

[프레시안] 2009년 01월 30일(금) 오후 06:12

용산 4구역 부위원장 "냉장고 몇 대냐 물어보고 보상액 통보"

 [프레시안 김하영 기자]

 비극의 무대가 된 '용산 4지구.' 세입자 대책위 탁문옥 부위원장이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위원회 뉴타운 T/F단의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4~5년 사이 용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술회했다. 그의 증언 속에 현재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의 모순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옆 가게 부셔 오물 뿌리고…"

"4구역은 용산역에서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한강로 2, 3가 일대 국제빌딩 주변입니다. 2003년 주민공람을 통해 도심환경정비지구가 된 걸 알았습니다. 인근 세계일보 터에 파크 타워 등 40층이 넘는 주상복합빌딩 들이 들어서고 분양 당시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로또'가 됐습니다. 이에 발맞춰 4구역에도 40층 이상 주상복합빌딩이 7개 동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2007년에 조합이 설립되자 세입자로서 조합에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말 관리처분총회를 거치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총회 책자에는 세입자 문제가 전혀 거론도 안 돼 있는 겁니다. 고작 감정평가 법인에서 가게들 돌아다니면서 '월 매출이 얼마냐', '종업원이 몇 명이냐', '냉장고가 몇 대냐'고 묻는 게 전부였습니다. 2008년 4월에 보상가액을 통보하고 '이주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용산 4구역만 아니라 주변이 1~5구역은 물론 삼각지 쪽까지 전부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이 이뤄지는 바람에 주변에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재개발로 주변 시세도 평당 1000~1200만 원 하던 것이 1억 가까이 뛰니 어디로 가겠습니까. 보상 액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적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씩 용산에서 장사하던 사람들더러 서울 변두리나 경기도로 가서 장사하고 살라는 게 말은 쉬워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다가 6월에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자 철거 용역들이 들어왔습니다. 업소마다 덩치 크고 껄렁껄렁 한 사람들 7~8명 씩 모여들었습니다. 선량하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게 갖고 떼돈 벌려 하느냐'고 위협했습니다. 이에 굴복해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꼭 그 집을 낮에 철거해서 옆 가게도 장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철거한 자리에는 냄새 지독한 오물들을 부어 놔 영업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주변에 파이프로 철책을 만들어 사람들 통행도 못 하게 했습니다.

명도 소송도 들어왔습니다. 세입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항변했습니다. 도심환경정비법에는 상가 세입자에 대한 보상 기준이 없습니다. 세입자는 법으로도 불리한 겁니다. 그래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번에 희생된 분들은 저희와 함께 하지 않아 위헌제청신청한 것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참사가 나고도 조합에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 탁문옥 부위원장(왼쪽)과 김남근 변호사(오른쪽) ⓒ프레시안

"도쿄 신주쿠는 재개발에 17년, 록본기는 50년 걸려"

이날 발제를 맡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김남근 변호사는 "재개발 지구의 세입자 거주 비율이 대부분 70%를 넘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동시다발적 이주 수요를 폭발시켜 주변 전세값, 소형주택가격 폭등을 불러오는 현행 과속개발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며 "순환개발방식이나 순차적, 단계적 개발방식으로 재개발·뉴타운 개발사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 도쿄의 신주쿠는 재개발을 하는데 17년, 록본기는 50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변호사는 "현재의 뉴타운 지정과 인허가 속도를 유지할 경우 2010년, 2011년에는 10만 가구 정도의 이주 수요가 발생해 과속개발로 인한 부작용이 극대화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2차 뉴타운 11곳 중 48%(면적기준)만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이주를 시작하는데도 2만 세대의 이주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데, 3차 뉴타운까지 모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이주가 시작된다면 10만 세대 이상의 이주 수요가 발생해 전세값, 집값 대란이 더욱 확대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
이명박 정부는 세입자, 영세가옥주, 상가임차인 등 약자들의 아픔과 한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2008년 9.19 대책에서 뉴타운 지구를 2배 확대 추가 지정하고 사업 속도를 1년 이상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며 "뉴타운 사업 시행 인가를 연차적으로 최대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소형저가주택, 임대주택 건설비율 확대 및 세입자의 자격취득요건 완화, 주택자금 저리 융자 △세입자의 소득 수준에 따른 임대료 차등부과제도 등을 통해 원주민의 재정착률을 높이고, △분양가 상한제 유지 △광역공영개발 방식 도입 △시장·구청장 등 행정기관의 분쟁 적극 개입 및 3자 개입금지 도입 중단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경찰, 철거반 불법 감독 철저히 해야"

또한 재개발 지역의 폭력 사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김 변호사는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게 강제퇴거시 관할관청, 경찰 등 공공기관이 준수해야 할 인권기준을 지침화하도록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엔은 강제퇴거를 명백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공익사업법 제78조에는 세입자나 무허가건물의 소유자 등을 아예 이주대책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많은 개발 현장에서 이들이 대안 없이 강제퇴거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어 "철거행위와 경비업무는 전혀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분리해 경찰이 책임을 지고 감독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거반원은 철거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먼 산 구경하듯 이러한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관할 경찰서장이 경비업법을 준수하는지 책임을 지고 감독하게 해 철거현장의 폭력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30일 열린 뉴타운 정책 재점검 토론회. ⓒ프레시안

"뉴타운 공약 남발 말라"

김 변호사는 이밖에 "정치권도 보궐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재개발-뉴타운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서민들과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공약을 내세워야 할 야당인 민주당 후보들조차도 뉴타운 공약을 남발해 한나라당을 쫓아가는 행태를 보였더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당 뉴타운 T/F단은 이날 △'도시재정비촉진기금' 설치로 정비사업의 공공성 강화 및 중앙정부, 지자체의 재정지원 및 지도·감독 강화 △영업세입자 휴업보상비 현실화 및 정비사업 종료 후 선입주권 보장 및 상가권리금 보상 현실화 △소형·임대주택 의무비율 강화 △순환정비방식 강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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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기자 ( richkhy@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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