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대화"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나눔을 위해 보내주신 분의 글이 있어 함께 나눠보고자 올려봅니다.


말씀묵상 요5:1-18

내가 말씀안으로

38년된 중풍병자가 베다스타 연못에 누워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물이 움직인 뒤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지 나았기 때문에  소문을 좇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가망이 없습니다.

물이 동할 때 그가 가는 동안에 벌써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고 그를 들어다가 연못에 넣어줄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절망만 커갑니다.

이 절망의 순간에 자기의 아픔을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하나 자기를 그렇게 따뜻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게 누구의 음성입니까?

내가 사는 동안에 이런 따뜻한 만남은 처음입니다.

나보고 낫고 싶으냐고 물어오는데 지난 38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나를 둘러싼 그 어떤 사람도 내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그러다가 죽겠지! 안됐어 불쌍해! 무슨 죄가 그렇게 많길래!

그런데 이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보고 낫고 싶으냐고!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분명 이건 주님의 음성이야!

내가 간절히 기다렸던 주님의 음성이 맞아!

주님 내가 38년 동안이나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끌고 왔는지요! 나를 구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고 묻는데 내가 낫고 싶다고 바로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이분한테 다 쏟아놓고 싶었습니다.

이분이라면 나의 말을 다 들어줄 분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주님의 말과 동시에 이상한 능력이 내게 들어와 자리를 들고 걸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말씀이 내안으로

38년된 중풍병자가 바로 나입니다.

왜 38년씩이나 병을 끌고 다녔을까요?

나에게는 벅찬 일들만 찾아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무엇하나 잘 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골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망아지 같았습니다.

청년기에 청년 Y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사회와 역사안에 있음을 알았고, 정의와 평화를 노래하고, 꿈과 이상을 그렸습니다.

청년기에 열정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것은 그때 함께했던 선배들,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쏟았던 그때 그 에너지가 지금도 이 우주를 덮고 있습니다. 가끔 그시절을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몰려와 정의를 다시 세웁니다. 평화를 만들어 가게 합니다. 그때는 사실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철학도 정의로움도, 꿈과 이상도 껍데기만 붙들고 살았습니다. 껍데기로 살아도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역사의 중심에서 한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기특했습니다.

그러나 껍데기라서 우리가 서로 꿈과 이상을 주고 받으면서도 실망과 좌절을 또 주고 받았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노래 하면서도 상처와 분노를 함께 겪었습니다. 세월 속에서 여전히 그것들이 반복되는 과정속에서  껍데기에서 내면화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제 50이 다되는 지금에서야 말입니다. 그것은 시련과 세월 덕분인 것 같습니다.

신앙도 새롭게 만났습니다. 기존의 교회 속에 갇혔던 하나님을 역사와 민중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꿈꾸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일에 내가 도구로 쓰여지길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내딴에는 고난의 현장을 택하여 농촌에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농촌 언저리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여 자녀를 3이나 두었습니다.

결혼이후에 찾아오는 시련들은 내가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사회 운동에 참여하면서, 경제력까지 책임지면서, 너무도 씩씩하게 잘살아왔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힘들 때는 늘 혼자였습니다. 남편의 부재, 남편은 있으나 남편은 나와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역사회안에서 자기역할을 하기도 벅찼습니다. 가정은 살림은 내가 잘하려니 전적으로 맡겨두었습니다. 남편은 내가 너무 든든했나봅니다.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불평한마디 안하고 다 받아주면서 사니까 늘 긍정적이고 씩씩하니까 아무 문제없는 줄 알았나봅니다. 남편도 나눔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도 나의 어려움과 고민을  남편과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많은 일을 너무도 씩씩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부재한 남편을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문제는 내안에 있었습니다.

내가 나눔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쁨과 어려움들을 충분히 나누면서 살았어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똘똘 엮어서 아주 씩씩하게 지고 왔습니다. 너무도 씩씩하게 지고 왔기에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고 남도 몰랐습니다. 38년씩이나 끌고 와 보니 온갖 병이 들어 지쳐있는 모습이 바로 나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어둠속에 있지 말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 나와라 하십니다.

그 말은 동시적 사건입니다.

말과 동시에 이전 것은 다 사라지고 오늘 새로운 나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내가 주님을 그렇게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