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YMCA 송영한 이사님께서 전국대회에 참가하신 후 쓰신 글이 있어 함께 나눕니다. 이 글은 구리넷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gurinet.org/sub_read.html?uid=9168§ion=sc41 ------------------------------------------------------------------------------------ 틀림과 다름 | |||||||||||||
지난 주말에 전남 나주에서 열린 40차 한국YMCA 전국대회에 다녀왔다. 이번 전국대회에서 대의원들은 4대강사업반대를 의결하는 등 눈앞에 닥친 현안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회기간동안 보고 들었던 두 가지의 신선한 충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번 전국대회의 ‘문화의 밤’은 예향인 광주에서 준비한 만큼 독특하게 짜여졌다. 윤진철 명창의 걸쭉한 남도소리, 제1회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저녁무렵‘과 ’직녀에게‘의 작곡자인 가수 박문옥 씨의 공연, 그리고 25년 지기 윤 명창과 박문옥 씨의 환상적인 트로트 조인트 리사이틀은 관객들을 쥐락펴락 했다. 거기에 더해 오늘 소개하는 전위 피아니스트 윤효간 씨의 '피아노와 이빨'공연은 압권이었다. 윤효간 씨는 60년대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급 성냥공장이었던 부산의 UN성냥 가문의 막내아들로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유복한 가정에서 피아노를 배웠던 윤 씨는 서울에서 있었던 피아노 콩쿠르에서 낙방한 뒤“왜 콩쿨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똑 같은 복장을 하고 똑 같은 곡을 똑 같은 테크닉으로 칠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작게 치라는 악상 기호에서는 크게 치고, 세게 치라는 악상기호에서는 여리게 치는 등 틀에 박힌 피아노 교습방법에서 벗어나는 실험을 하게 된 끝에 드디어 가출하게 된다. 고졸학력이 전부인 그가 1년에도 대학에서 수천명씩 배출 되는 피아노 전공자들을 헤치고 그만의 독특한 주법을 인정받고 대중음악 편곡자로, 연주자로 인정받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3대 오페라하우스로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대중음악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대 위에 있는 피아노를 과감하게 끌어내려 트레일러에 싣고 대륙을 횡단하며 연주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2005년부터 연주와 더불어 관객과의 소통을 하기위해 시작한 ‘피아노와 이빨’ 공연은 이날로 876회를 기록했으며 연인원 100만여명이 그의 공연을 관람했다. ‘피아노와 이빨’은‘피아노와 이야기’라는 말이다. 연주 중간 중간에 윤 씨는 자전적인 독백을 하면서 피아노라는 악기가 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말한다. 그는 그의 이빨(이야기)을 통해 “누구나 다 똑같이 치는 베토벤을 거부하고 나만이 칠 수 있는 베토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에는 100점도 없고 1등도 없다. 그저 잘 하는 것, 감동이 있는 것,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콩쿠르에서 떨어진 학생, 비싼 돈 들여 유학을 다녀와서도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유학생들,1등에서 밀려나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틀리게 연주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연주했을 뿐이다”며“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밖에는 또 다른 넓은 세상이 있고 도전할 무대가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날 뒤풀이에서 나는 부산YMCA 실무자들로부터 또 하나의 쾌거를 들었다. 90년대부터 언론개혁을 추구하던 잡지 ‘인물과 사상’의 독자모임인 인사모(인물과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안티조선 운동을 같이 했었던 화덕헌 동지가 부산 해운대구 구의원으로 당선 됐다는 소식이었다. 과거에 야도(野都)라는 명성에 걸 맞지 않게 3당 합당 뒤에는 여당의 텃밭이자 문전옥답이었던 곳, 더구나 부산의 강남이라고 일컫는 해운대구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당당하게 당선 된 화 당선자는 원래 사회문제 사진작가다. 인물과 사상에도 수년간 맨 앞장에 그의 사진과 글이 실렸었고 한동안 그 사진과 글을 보는 것이 낙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사회문제를 찍는 일이기에 동네구석구석을 누볐고 자전거를 타고 고객의 사진을 배달하는 등 지역주민들과 유대와 공감대를 쌓아왔다. 40대 중반에 노랑머리와 빨간색 T셔츠를 입고 선거운동에 나선 이 사나이를 해운대구 사람들은 눈 여겨 봤다. 그리고 언론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이랜드 비정규직 해고에 대항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이문열 책 장례식 운동을 주도하는 등 이 사회의 어둡고 습하고 그늘진 곳에 대한 그의 생각과 해결 방법에 흔쾌히 동의 해 줬다. 이야기를 전해 듣자니 선거운동도 그 나름대로 방식대로 운동원 없이 혼자 해냈으며 사진작가의 특색을 살려 톡톡 튀는 선거운동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한다. 기존 정치인들은 화덕헌의 방식을 틀린 생각으로 치부 했을지 모르지만 그 나름의 다른 방식은 당당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그는 해운대구 다른 진보신당 구의원 2명과 함께 해운대구를 바꾸는데 앞장 설 것으로 믿는다. 나는 이 두 사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사회가 이제 틀림과 다름을 구별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일제36년의 식민통치와 동족상잔의 비극,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을 겪으면서 힘 있는 곳에 줄을 서야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했던 외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려 왔다. 다수와 다른 생각을 이야기 하면 그것을 틀린 생각으로 매도해 사회에서 매장해 버렸던 시절들을 넘어서서 누구나가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인정받는 다양한사회야말로 우리가 꿈꾸어 왔던 세상이 아니었던가? 마치 서로 다른 색이지만 함께 어울릴 때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무지개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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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6/27 [21:53] 최종편집: ⓒ 구리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