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사편찬위원장이신 이만열교수님께서 6월 21일, 부시 초청 평화기도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셔서 주신 인사 말씀입니다.  예수의 평화를 생각하는 한국 크리스챤들에게 부시 초청 평화기도회를 계기로 한국 기독교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 함께 나눕니다.

‘부시와 평화’, 호전적인 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21세기를 전쟁으로 시작한 부시, 그에게 평화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데 더구나 ‘평화기도회’는 더 용납될 수 없음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아무리 한국 교회의 몇 몇 지도자들이 역사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호전성을 가진 그를 기독교의 이름으로 평화의 사도인 양 초청하는 것은 한국 교회를 오도하는 것이며, 부시와 함께 ‘평화기도회’를 개최한다는 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있음을 인지한다면, 그를 빌어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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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부시 초청 6.25 ‘평화기도회’ 우려 기자회견 인사말

- 부시와 ‘평화기도회’가 어울릴 수 있을까.


이만열교수님(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달 6월 2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가 ‘분단을 넘어 평화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데, 거기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했단다. 주최측은 부시 전 대통령이 평화통일과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학술회의는 부시초청 평화기도회가 적그리스도적이며, 우리의 현 상황에서 전쟁으로 몰고가려는 반인륜적인 행위이며, 평화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런 관점과 함께 몇 가지로 내 소회를 말하겠다.

‘평화기도회’에 부시를 초청하겠다는 발상을 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많다. 부시는 1994년 체결된 북미제네바 합의를 차기하여 한반도의 핵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를 제거해 버렸고,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가졌다고 욱박질러 북핵문제를 더 고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당한 명분 없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은익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거짓된 것이었음이 뒤에 드러나게 되었다. 미국과 영국 측이 승리를 선포한 뒤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은 "이라크에 대량 파괴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 파괴 무기 은익은 이렇게 거짓으로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 명분 없는 전쟁은 이라크라는 나라를 철저히 파괴했고, 2007년 현재 민간인 사망자 최소 65만 명과 난민 450만 명을 양산했다. 여기에 지금도 살해당하고 있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산하면 피해 규모는 더 불어날 것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근거없음이 밝혀졌을 때 부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했을까. 이라크와 세계에 사과하고 이 정당성 없는 침략군을 철수하고 이라크에 법적인 책임을 졌어야 했다. 불의한 전쟁으로 미국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린 부시를 한국 교회가 평화의 사도로 둔갑시켜 초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평화가 전쟁의 승리로 주어질 수 있을까. 전쟁에 승리하여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침묵토록 하는 것이 평화일까. 부시를 이은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한술 더 떠서 미군 증강을 결정했고 우방에 대해서도 파병을 요청했다. 그걸 보면서 오바마의 등장 때에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지금 전쟁에 쏟아 붇고 있는 그 막대한 비용을 평화재건의 비용으로 전용하는 때에라야 평화의 실마리가 풀려질 것이다. 거기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이사야 2:4) 평화의 때가 올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 이락에서 8년간 전쟁을 치렀던 부시 못지않게,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 소위 지도자들의 자세도 문제다.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겠다면서 평화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온 부시를 초청해서 그를 마치 평화의 사도인 양 대접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독교적인 가치관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응징을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부시와 그를 충동하는 기독교 세력들이 취한 태도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의로운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 아류에 속하는 이들이 없을까. 부시를 초청하여 ‘평화기도회’를 열겠다고 하는 이들이 바로 부시와 같은 동류의식을 가진 이들이 아닐까.

이번에 부시초청 ‘평화기도회’는 주로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빌려 거창하게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주관하는 그런 행사가 ‘평화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름이나 드러내는 그런 모임이 되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그 모임이 6.25의 동족상잔의 죄악을 고통스럽게 되돌아보면서 분단의 죄악을 통회하는 ‘미스바의 성회’(삼상 7:5-6)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려면 부시 초청을 취소하라. 아직도 이락 침공을 회개하지 않는 부시는 그런 회개의 모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로부터 욕먹을 일이 너무 많다.

이번 ‘평화기도회’를 주도하는 대형교회에 고언하고 싶다. 부시를 초청하여 그런 거창한 행사를 주관할 물질적 능력이 있다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처받고 가정이 파괴된 공동체를 찾아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조용히 그곳에 용서와 화해를 심고 평화를 확대해 가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조용한 사역이 부시를 초청해서 요란하게 평화기도회를 하는 것보다는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공동체와 민족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부시와 평화’, 호전적인 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21세기를 전쟁으로 시작한 부시, 그에게 평화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데 더구나 ‘평화기도회’는 더 용납될 수 없다. 아무리 한국 교회의 몇 몇 지도자들이 역사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호전성을 가진 그를 기독교의 이름으로 평화의 사도인 양 초청하는 것은 한국 교회를 오도하는 것이다. 부시와 함께 ‘평화기도회’를 개최한다는 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있음을 인지한다면, 그를 빌어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부시가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가 북미제네바 합의를 파기하여 북한 핵문제해결을 혼돈스럽게 만든 정책이나, 그가 저지른 중동의 두 전쟁은, “평화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태복음 5:9)이라는 말씀에는 결코 부합되지 않는다.


[2010년 6월 21일 11시 30분, 한국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행한 ‘조지부시 초청 6.25 기도회 우려 기자회견’ 장에서 행한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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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21-2_조지부시초청6.25‘평화기도회’우려기자회견인사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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