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YMCA운동의 역사1)
1) 학생YMCA의 탄생
한국사회 최초의 학생조직은 1896년 배재학당에서 창설된 협성회(協成會 )입니다. 이는 윤치호와 서재필이 귀국(1985년)하여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직한 것입니다. 협성회는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만민공동회의 주요 멤버가 되어 계몽?교육운동, 반봉건 운동,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합니다. 그 뒤에 협성회는 학숙청년회(學熟靑年會)로 바꾸어졌습니다. 배재학당에 1901년 최초의 학생 YMCA가 존재하여 중국, 홍콩의 학생YMCA와 교류를 하였습니다. 학생YMCA가 정확하게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창립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숙청년회가 개편하여 학생YMCA가 되었다고 추정할 뿐입니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협성회를 조직하고 이를 지도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윤치호, 서재필이 갑신정변 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유학할 때에 학생YMCA 활동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협성회와 학생Y가 같은 학교에 조직되었던 유일한 학생조직이었다는 점이고, 셋째는 1898년 독립협회의 해산 이후에 1899년 청년 150여명이 외국의 선교사들에게 YMCA창설을 위해 파송되어 왔을 때에 이미 배재학당에 학생YMCA가 존재하였다는 점입니다. 어쨌거나 1901년 황성기독교청년회(현재의 서울YMCA, 1903년 창립)보다 먼저 학생YMCA가 존재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며, 1902년에는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에 가맹하였습니다.
학생YMCA의 창립은 독립협회로 대표되는 개화자강운동의 흐름과 기독교의 에큐메니칼(기독교 교회 일치운동)운동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시대를 개혁하고자 하였던 갑신정변의 실패 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온 윤치호,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를 조직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할 만한 공화정(왕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사람이 정부를 구성하여 통치)을 주장할 만큼 독립협회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독립협회의 주도에 의해 열린 만민공동회는 민주주의를 이루어 나가는 통로였다. 또한 한글보급 운동, 독립신문 등을 통한 계몽활동들이 독립협회의 해산으로 무산되어졌고, 지도자였던 이상재, 김정식, 이승만, 김규식 등은 옥고를 치루고 윤치호, 서재필 등은 외국과 시골로 피신하게 됩니다.
독립협회를 통해 개화운동에 앞장섰던 협성회 회원들은 지도자를 잃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때에 아마도 협성회의 회원들이라고 추정되는 150여명의 청년들이 독립협회의 후신으로서, 독립협회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서의 1899년 YMCA창설을 요구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학생YMCA는 이러한 시대적 정신을 가지고 창설되게 되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모습의 YMCA는 아니었지만 청년정신, 기독교이념, 민족주의, 개화사상, 자강의식과 같은 정신과 뜻으로 뭉쳤던 것입니다.
2) 일제하의 학생YMCA운동
한국 청소년YMCA운동의 역사.hwp
1) 2006년 청소년YMCA 활동 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