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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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봄을 지워버렸다

삼월 지나 사월로 가는 내변산 골짜기 초입

싸락눈인지 흙바람인지 하늘은 어둡고

길 가에 피어나던 목련도 무리무리 얼어붙었다

개울물에서 막 건져낸 아가의 배냇저고리처럼 

봄 하늘 아래 시린 물 뚝뚝 떨어뜨리며

눈부시게 빛나야 할 꽃송이들이

서리 맞은 하늘타리처럼 가지마다 누렇다

수상한 세월이다, 봄은 이름만 남고

두릅나무 새 순처럼 고개를 쳐들면

망나니 칼날 같은 탐욕의 권력 아래

새파란 목숨들이 턱턱 잘려나가는구나

물이 물길에 갇혀 흐르지 못하고

욕망의 불길 속에 애잔한 목숨들 소멸하느니

꽃과 나비 어우러져 새로운 씨앗을 잉태해야 할

봄은 이제 혹한의 시간 속에 갇혀

불임의 계절이 되어버렸으니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뛰는 무모한 시절 앞에

사월이 오월을 부른들 무엇을 더 기대하랴

새것을 낳기 위해 제 몸을 공양하는

보살 같은 꽃등들 산천에 타오르지 않고서야

어디랴, 봄다운 봄이 다시 돌아올 것인가




'평화를 꿈꾸는 한국YMCA전국연맹 이학영 사무총장'님이 불현듯 보내주신 한편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