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MCA전국연맹 통일위원회 위원장이자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노정선교수님께서 연맹, 12월 월요예배(12월 6일, 월, 연맹 지하회의실)에서 연평도 사태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위기 진단,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 등을 간략히 말씀해 주시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정선교수님은 대화 시간을 통해 연평도 사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면서 현 시국에 대한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시면서 소통을 위한 노력으로 개성공단의 확대, 정상회담, 서해안 평화지구에 대한 문제, 6자 회담 등에 검토하시면서 국제 무기 거래상들에 대한 감시도 제안하셨습니다.

아래의 글은 노정선교수님의 말씀을 녹취한 내용으로 중간제목을 편집자가 임의로 달았습니다. 노정선 교수님의 원고와 녹취록을 함께 첨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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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사회의 대응



노정선 교수

본회 평화통일위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 이글은 지난 12월 6일, 한국YMCA전국연맹 아침예배에서 녹취한 것입니다.

(한국YMCA전국연맹 지하회의실, 오전 9시 30분, 전국연맹 월요예배)

** 중간 제목은 편집자가 달았습니다.


연평도 방문 이야기

연평도에서 일어난 포격사건, 포격사건이라고 표현하는 시각도 있고,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총장님 방에 펴놨더니 임은경 간사님이 “가져다 버릴까요?”하더군요. 이것을 주워오는데 20만원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 연평도에 세 번 다녀왔습니다. 이것들은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인천에 새벽에 가서 배로 연평도를 가는데 어떤 날은 9시 반, 어제는 10시 반, 출발시간이 달라집니다. 어떤 날은 이미 떠났더라구요. 썰물, 밀물과 관계가 있어서 다섯 번 인천에 가서 두 번 실패하고 세 번 갔다 왔습니다.


이것이 연평도 집에 폭탄이 떨어져서 완전히 까맣게 타버린 재입니다. 얼마나 잘 탔느냐 하면 이렇게 까만 것이 손에 묻을 정도로... 질긴 물질, 이걸 하나 주었습니다. 이것은 어제 주은 것인데 여러 가지가 합성된 것입니다. 거기가 대체로 유리가 깨졌다고 보면 되는데, 그것 중에 하나를 주웠고 이것도 역시 만지면 새카맣게 묻습니다. 이것이 좀 심각한 것인데, 이런 것이 엄청 많습니다. 쇳덩어리가 이렇게 되었으니까 어느 정도로 폭탄이 쎈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꽃들은 잘 살아 있습니다. 화분에 있는 꽃들은 다 말라 죽었고. 두 세 개 정도 되는 횟집의 어조에는 비싼 고기가 다 죽어서 썩어 있었습니다. 수조에 있는 고기 값만 해도 돈 수백만원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옆에 찔레꽃이 피어있는데 이렇게 하나 꺾어 와서 집에다가 심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잘 자랍니다. 개 두 마리를 봤는데, ‘굶으면 어떻게 하나’, ‘나를 물면 어떻게 하나’걱정을 했는데 물지도 짖지도 않고 행복한 눈으로 바라봅디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오히려 나를 동정하는 눈빛으로‘인간아 너는 왜 이렇게 뛰어다니느냐’하는 것 같습니다. (그후에 알게 되었지만, 동물보호단체원들이 매일 밥을 주고 간다고 합니다). 택시, 자전거도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배가 나오는 시간은 1시 반 배, 어제는 2시 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연평도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10분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 마을까지 가서 돌아보고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운송수단이 두 발밖에 없었습니다. 일생 처음으로 트럭 뒷칸에 타는 중대한 생명의 경험을 2번이나 했습니다. 나올 때는 구보로 뛰다가 괜찮은 트럭을 세우니까 그 사람들도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빨리 타세요, 했습니다.  인천의 찜질방에서 살면서, 포탄이 떨어지고 연평에다가 급해서 짐이랑 다 놓고 나왔거든요. 빨리 집에 가서 몇 가지 챙겨서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트럭을 타는데 3번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트럭 타는 기술이 생겼습니다. 바퀴를 밟고 타면 되더군요.


이북 사람들은 뭐라고 하냐면, 제가 통일위원장을 하고 20년 동안 이북의 목사님들을 상대로 하니까, ‘저희가 로정선 박사님 머리를 까갔습니까? 안 깝니다.’ 두 번째 말이 더 중요해요. ‘그러나 전쟁이 나면 자비는 없습니다.’ 전쟁이 나면 미군부터 까갔지만 일단 붙으면, 미군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까 그땐 각오하라는 것이 이북사람들 얘기입니다. ‘전쟁이 나면 자비는 없다’는 것이 이북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연평도 사태의 원인

‘연평도 사태가 왜 났느냐!’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가 ‘남쪽을 향해서’ 포사격 훈련을 했어요. 지도에서 분홍색 있는 곳입니다. 연평도에서 23일 아침부터 포사격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포라는 것이 사격훈련을 안하면 안 됩니다. 기계니까 고장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포사격 훈련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북으로 쏜 것이 아니라, 서쪽 남방으로 쐈습니다. 그러니까 연평도에서 북쪽이 아니라 남서쪽으로 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남서쪽으로 쐈는데, 이것이 자기(북측)의 바다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입니다. 이것이 싸움의 핵심입니다. 1953년에 유엔군 사령부에서 금을 그은 것이 북방한계선이라는 것입니다. 휴전을 하면서 휴전선을 다 그었는데 바다만 긋지를 않았습니다. 중대한 실수입니다. 바다까지 그었으면 이런 전쟁은 안 나는 것입니다. 바다의 선을 안 긋고 끝났는데 남한의 배가 자꾸 올라갑니다. 우리 배, 미군 배, 어선도 다 올라가거든요.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라는 한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엔군 사령관이 북방 한계선이라는 선을 긋고 이 이상은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쪽 배와 미군 배에게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북쪽은 여기에 관계가 없고 동의한 적도 없고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 한다고 하니까 미군 입장에서는 이 이상은 가지 말아라 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북방 한계선입니다. 1999년에 북한은 이렇게 금을 긋고 우도라는 데까지 살짝 남쪽 방향으로 금을 긋고 그 북쪽은 다 자기 바다라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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