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하나님 통치’(the Reign of God) 운동1)



(1) 야훼 통치와 이스라엘 역사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basileia tou theou) 개념은 기독교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표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민족사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구한 역사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희랍어 ‘바실레이아’에 상응(相應)하는 구약적 개념은 ‘말쿳 야훼’(malkut YHWH)2)와 ‘멜렉 야훼’(melek YHWH)3)가 있는데, ‘말쿳 야훼’가 하나님의 지상적인 다스림(Herrschaft)을 강조하는 개념이라면, ‘멜렉 야훼’는 하나님의 왕으로써의 주권(主權: Royalität)을 강조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B.C.13세기 중엽 에집트 파라오 람셋 II세의 통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을 감행한 후, 그들은 40년에 걸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광야생활을 한 끝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이주할 때, 갈릴래아 비옥한 농촌 평야지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블레셋이나 아말렉 족속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족속들은 왕 중심의 강력한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의 비옥한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주로 산간 지역으로 밀려나 그곳에서 밭을 일구고 정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에집트에서 해방을 경험한 히브리인들은 점차적으로 가나안 도시국가들로부터 소외된 가나안 농노(農奴) 하비루(Habiru)들과 연합하여 소위 “초기 이스라엘 지파(支派) 연맹”을 형성하기에 이른다.4)

초기 이스라엘 지파 연맹은 히브리 노예들을 파라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야훼를 신으로 섬기고, 야훼 제의(祭儀)를 중심으로 지파동맹(支派同盟) 공동체(Amphiktyonie)를 이루었다.5) 지파 연맹 공동체의 정치형태의 특징은 야훼만을 주권자(主權者)로 모시는 야훼 통치(malkut YHWH)하에서 모든 지파(支派)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의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왕을 세우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파라오 또는 가나안 도시국가의 왕들로부터 그들이 억압을 당했던 부정적 경험들이 인간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지파 연맹은 왕을 따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지파들의 대표에 해당하는 판관(判官)을 민의(民意)로 선출하여 그로 하여금 지파 연맹에 관한 전반적인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인 사안(事案)들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판관들에게는 왕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전권(全權)이 주어지지 아니했다. 초기 이스라엘 지파 연맹 공동체가 이상(理想)으로 삼았던 야훼 통치 이념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을 억압하는 군주국가들의 왕정 통치 사상에 대한 일종의 ‘대립 모델’(Gegenmodel)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지파 연맹 체제가 대략 200여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지파 연맹체가 “오직 야훼만”(mono Yawheism)의 신앙으로 뭉치고 지파들 사이에 평등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해방의 하나님 야훼 앞에서 모든 지파는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신정통치(神政統治) 이념이 초기 이스라엘 지파 연맹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끈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야훼의 주권을 선언함으로써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왕 중심의 군주국가(君主國家) 체제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초기 이스라엘 지파 동맹의 느슨한 정치 형태의 한계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주변의 왕 중심의 강대국들이 침략해왔을 때, 이스라엘 지파 연맹은 각 지파에게서 차출된 농민군으로 그들과 싸워야했는데, 그것은 역부족이었다. 전쟁에서 블레셋이나 아말렉 등 주변 가나안 군주국가들의 강력한 군대를 이길 수 없게 되자, 초기 이스라엘 지파 연맹은 결국 야훼 중심의 신정 정치제도를 포기하게 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왕 중심의 강력한 군주국 형성을 원하게 된다.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마지막 판관 사무엘에


1) 김명수, 경성대 신학과 교수, 08년 간사학교 1학기(1월 21일 -2월 22일) 강의록


2) 시47. 93. 96-99을 볼 것.


3) 시45; 사45:18-25; 10:5-15; 52:7-10을 볼 것.


4)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정복설(G.E.Wright), 이주설(M.Noth), 혁명설(G.E.Mendenhall, N.K.Gottwald)이 대표적이다.


5) M.Noth, The History of Israel, New York, 1960. 85ff.를 참조할 것. 노트는 그리이스, 로마, 에투루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제의 공동체에서 암시를 받아, 초기 이스라엘 지파동맹이 제의(祭儀)공동체적 성격을 띈다고 추정한다.


하나님 통치의 이해(김명수).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