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글0906
고통 받는 시민에게 위로와 꿈을 주는 시민사회 신문을 축하합니다.
- 시민사회신문 지령 100호를 맞으며 -
이 학 영(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잔인한 시절이다. 온 국민이 티비 생중계로 바라보는 가운데, 불꽃 더미 속에서 멀쩡한 시민들이 숯덩어리로 검게 타서 죽어가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단돈 몇 십 원 택배비를 올려달라고 외치던 노동자가 자살을 하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던 분이 제 목숨 하나 지키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다. 평생을 조국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던 노구의 목사님이 자살을 하였다. 이 좋은 계절에 죽음이라니. 이 찬란한 초여름의 푸른 잎사귀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죽음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21세기 소득 2만불을 바라본다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웠다고 믿었던 자랑스런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서울의 가장 심장부인 서울광장은 볼썽사나운 경찰차들로 둘러싸여 있다. 한 나라의 가장 자랑스러운 일번 가, 세종로와 태평로엔 일상적으로 경찰차가 서있고 경찰들이 늘어서 있다. 하루도 경찰들을 보지 않고는 시내 중심가를 걸어 다닐 수 없다. 밤이 되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을 토끼몰이 하듯 몰아붙이며 방망이로 두들겨 패고 있다. 이제 민주국가가 아니라 경찰국가가 되려는가? 경찰을 동원하지 않고는 권력은 안심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경찰을 동원하지 않고는 나라가 운영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권은 어디로 도망가 버렸던 말인가.
어떻게 불과 정부가 바뀐지 일 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처참한 세상으로 변해버렸단 말인가. 그동안 우리가 자랑했던 민주주의는 허구였던가? 경제가 성장하면 민주주의도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거짓이었던가?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 국민들이 또 다시 이런 잔인한 시절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불과 30여년도 되지 않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제 자식 같은 군인들의 총칼과 방망이에 무참히 죽어간 기억들, 바로 스물 두 해 전 1987년 6월,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태평로는 물론 전국 곳곳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함성의 기억은 모두 잊어버렸단 말인가?
집단망각이 일어나지 않고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면 무언가에 집단적으로 영혼을 팔아넘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몰랐다고? 이럴 줄 몰랐다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알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그런 속담을 몰랐다고? 몰랐다면 소가웃을 일이다. 이제라도 부끄러운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내자. 이제라도 물욕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도 인권도 평화도 모든 인간의 가치도 헌신짝처럼 내팽겨쳐 버렸던 우리를 부끄러워하자. 잘못 판단했던 우리의 집단적 자기기만을 고백하자. 은전 삼십냥에 제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처럼 경제만 살리겠다면 사기꾼 아니라 살인자 집단이라도 찍어주자던 우리의 자기 배반을 통곡하자.
우리 사회의 오랜 기득권 세력들은 남과 북의 평화적 교류도 싫고, 모든 사람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도 싫고, 시골이 서울처럼 발전하는 것도 싫은 사람인가보다. 가난한 놈들이나 부자 자식들이나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도 싫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싫고, 같은 병원에 다니는 것도 싫은가보다. 권력과 재산을 불리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온 나라가 부동산 투기장이 되던, 4대강 아니라 4백개의 강바닥을 다 헤집어서 골재채취를 하던말던 아무 상관이 없는가 보다. 공항이던 철도던 나라의 재산은 물론 국민들의 삶의 안전망인 의료보험을 망가트리던 아무 상관도 없는가보다. 하긴 돈이면, 권력이면 안될 것이 없는 세상에 뭐가 무섭겠는가. 뭐가 두렵겠는가. 이제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그런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입장권을 끊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들만의 대통령을 잘 모시고서 말이다.
권력과 언론은 이제 다수의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은 겉치레일 뿐, 소수의 힘 있고 돈 많이 가진 사람들만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는 입장권을 천국행 입장권이라며 선전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라고 선전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고분고분 따라가기만 하면 모두가 돈방석에 앉을 것처럼 유혹하면서 기만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기에 다른 의견을 내거나 비판을 하면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차별로 짓밟고 있다. "재벌과 신문사에 방송을 겸업하게 해서 너희들만을 위한 미디어 천국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 돈 많이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율형 사립학교를 만들어 너희들만의 귀족 엘리트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영리병원을 만들어 돈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고급병원과 가난한 사람들만이 가는 구질구질한 동네병원으로 차별화해서 나중에는 아예 의료보험 자체를 무력화시켜버리려고 하는 것 아니냐? 4대강 정비사업은 골재채취와 땅투기해서 돈벌려고 하는 꼼수가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순한 시위꾼, 불법 촛불세력이라고 매도해버린다.
이런 권력 아래서, 이런 신문과 방송 아래서, 이런 허위와 기만의 사회 한가운데서 언제까지 우리는 집단 망각, 집단적 자기배반에 빠져있어야 하는가? 얼마나 더 속으면서 지옥 같은 고통의 세상을 살아야 영혼까지도 팔아먹었던 지난날의 우리를 반성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수난을 당해야 멀쩡한 세상 한가운데서 더 이상 생목숨을 잃지 않게 할 것인가.
오늘 지령 100호를 맞는 '시민사회신문'에게 그런 점에서 참 감사드린다. 돈 한 푼 보태주지도 못했는데 이 엄혹한 세월 한가운데서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오다니. 그냥 온 게 아니고 이 시대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싸우면서, 한편으론 끊임없이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꿈을 보여주는 일을 하면서 왔으니 말이다. 국민이 모두 함께 주인되는 민주공화국, 시민이 사회운영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민사회를 꿈꾸는 시민사회신문이 이제 100호를 넘어 그런 꿈을 이룰 때까지 더욱 발전하리라 믿는다. 왜냐고? 시민사회신문이 꾸는 꿈이 바로 우리 모든 국민의 꿈이므로, 그런 꿈을 꾸는 시민들이 바로 시민사회신문의 독자요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축하 또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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