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모임 2.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1)



90년대에 YMCA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보겠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변혁적인 집합적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관한 논문을 썼다. 90년대에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대학 강단에 잠시 있었지만, 나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YMCA, 환경운동연합, 크리스찬 아카데미 등의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그 때 지역YMCA 교육 등으로 참여하면서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시민단체에 관여했던 것이 그런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헛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게 됐다. 생활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측면에서 성찰적인 글들을 쓰게 됐고, 프랑스에 다시 와 스스로 방법론적 단절이라고 말하는 나의 3無 시대 - e-메일, 휴대폰, 자동차 등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5년 있는 동안 한국사람 안 만나고, 한국 책 안보고, 한국 TV도 보지 않는 생활을 시작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기에 파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파리 시내를 걸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파리 시내 곳곳, 골목길까지 표시된 지도를 구입해 골목길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중 오전에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오전 시간대 라디오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작가들이 나오는 방송이 있는데, 요일별로 주제가 있었다. 월요일에는 역사, 화요일에는 도시공간, 수요일에는 문학, 목요일에는 과학, 금요일에는 철학, 토요일에는 시사 등에 관한 주제로 매일 매일 방송된다. 그리고 오후에는 파리 시내를 다니기 시작했다. 프랑스에는 소르본대학이 없다. 파리 4대학인데 소르본이 유명하니까 그냥 한국 사람들이 소르본대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파리대학이 1 대학부터 8 대학까지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파리 시내도 그렇게 구분되어 있다. 달팽이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로 세느강이 흐르고 있다. 나는 프랑스에서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16구에 살았는데, 한국의 강남과 같은 곳으로 6층 정도 되는 오스만식 건물로 되어 있다. 19, 20구 쪽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블록이다. 16구 쪽에서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길가 층 1층에서 살았다. 1층은 관리인들이 살던 곳으로 싸게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시작해 19구, 20구 쪽 등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곳을 다녀보고 프랑스 부르조아들의 삶의 방식도 많이 보게 됐다. 19구, 20구 쪽 노동자들이 사는 곳은 무섭다는 신화가 있어 밤에는 못가 보고 낮에 가봤는데, 길가 양쪽으로 흑인들, 아랍사람, 터키사람들이 있었고 중국 사람들도 좀 있었다. 처음 가서는 여기가 파리인가 싶었다. 내심 두려움이 있었지만 실제 가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두려움을 떨치고 밤에도 다니게 되었다. 박물관 300 곳, 공원 400 곳을 다 다녀봤다. 길거리에는 ‘베르구손이 살았던 집’, ‘샤갈이 살았던 집’ 등 안내 푯말이 다 되어 있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무정부주의자 프루동’ 등 영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람들이 살았던 집들이 있었다. 샤르트르나 프루동의 묘지 등을 보면서 영감을 느끼기도 하고, 역사와 문화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것을 향수처럼 날리지 않기 위해 ‘파리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매일 매일 기록하게 됐다. 윤치호선생이 영문일기를 썼다고 하는데, 난 능력부족으로 한글로 작성했다. 3년 정도 이렇게 작성해 기록했다. 사진 자료도 많이 준비했다. 좀 더 좋은 카메라로 찍어서 ‘파리의 문화 산책’ 등의 제목으로 발간하려한다.

다른 모습으로 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 한국학연구소가 있다. 이 기관이 러시아극동문제연구소 등을 초청해 북한 문제를 다루는 회의가 있었는데, 여기서 함재봉 교수를 만나게 됐다. 이 회의에 참가한 외국 교수가 북한체제를 ‘왕조체제’, ‘유교체제’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에 함재봉교수가 ‘그것은 유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유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유교를 비판적으로 보는데, 함교수는 ‘전통과 현대’라는 잡지를 통해 유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제기하고 있다. 함교수는 유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나는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지만 함교수는 많은 자료를 나에게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고등연구원에서 우연한 기회에 한국학 강의를 2회 맡게 됐고, 이 때 발표했던 주제가 ‘한국에서의 사회갈등과 사회운동’, ‘유교와 한국사회’다. 프랑스 사회학회에서도 같은 주제를 발표하게 됐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더 확대되었다.

한국은 시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많은 분야에서 운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속도지상주의’


1) 생명평화센터 2차 대화모임 강연 속기록(07.8.30, 연맹 회의실), 강사 : 정수복박사(프랑스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청연구원,), 사회 : 남부원(광주YMCA 사무총장), 기록 : 이윤희(연맹 생명평화센터 팀장). 이 글은 정수복박사님과의 대화모임에 대한 속기록입니다. 혹 잘못 옮긴 것이 있으면 기록자의 부족함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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