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벽이 나를 부른다


6월 광화문 네거리에서

누가 촛불 앞에 철벽을 쌓는가

누가 국민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는가

누가 적대와 분열의 벽을 쌓는가


국민이 적인가

촛불이 적인가

민심이 적인가


드높은 컨테이너 박스로 쌓아 올린

이 오만한 정권의 벽 앞에

거짓과 불신과 독단의 벽 앞에


이제 소통은 끝났는가

함께 살려는 노력은 끝났는가

너에게로 가는 길은 끝났는가


6월 백만의 촛불을 막아선 너는

이 초라한 ‘명박산성’ 뒤에 숨어

밤새 음모와 불안의 밤이지만

보아라 우린 얼마나 평화의 밤인가

우린 얼마나 즐거운 해방의 밤인가

얼마나 순수한 분노와 눈물의 밤인가


그리하여 이 절망의 벽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희망의 걸음을 시작하리니

벽 앞에서 쓰러져 우는 자여

가도 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자여

세상과 불화하며 날마다 상처받는 자여


벽이 부른다

벽이 부른다

촛불의 벽이부른다

우리가 온몸으로 부딪쳐 넘어서고야 말 절망의 벽,

마침내 새로운 사람의 길이 되고야 말

희망의 바리케이드가 나를 부른다


박노해시인 

한겨레신문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