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의 가치, YMCA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1)
생명평화의 가치는 영원하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이 가치들을 어떻게 실현하여야 할 지 생각을 모아보기로 하자.
생명평화의 새 담론의 요청 : 시운의 징조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특히 한반도에 3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1) 신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부각으로 지구시장체제와 권력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더욱 강도 높게 전개될 전망이다. 2)또한 지구제국은 동북아시아에 더 집요하게 파고들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0여 년에도 계속되어 왔었지만 이제 더욱 강도 높게 작용할 것이다. 3) 이런 과정의 내면에 수렴통합 된 근대적 요인인 과학기술주의체제(Convergent Technocracy)가 지배적인 용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신, 교통, 정보질서를 과학기술체제가 장악하였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구적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런 가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구화된 시장체제에서 생명은 수단에 불과하다. 모든 생명체는 적자생존을 위하여 치열한 약육강식의 쇠사슬에 매였고 인간생명체도 경제, 정치, 사회, 생태적 차원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다. 인간생명체 중에서 약자, 빈자, 무능자, 병든 자는 도태되는 것이 지구적 경제질서다. 여기서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소외와 억압을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생태계의 생명체는 지구시장의 체제를 위하여 객관화되고 수단화되며 착취되어 그 생명이 위협되고 생태계의 파괴로 인하여 점점 더 보전이 불가능한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생명의 가치가 짓밟히고 있다.
인간사회에서는 부하고 힘이 있는 인간개체생명체만이 중요시되고 있고 생태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공생/상생적 실체로서의 생명의 가치는 도외시 되었다. 모든 생명체는 공생(Conviviality)한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담론은 “생명의 공생성(Conviviality of all living beings)"을 축으로 하여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위의 3가지 과정에서 부정되고 있다. 사회/ 생태계는 즉 우주는 생명의 공생질서이다. 이 공생질서의 근간은 정의와 평화이다.
따라서 평화의 가치는 생명체의 상생/공생질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평화의 담론은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을 극복하는 지정학적 질서라는 인식을 극복하고 그것이 지극히 협소한 개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평화란 모든 갈등 즉 인간 개체간의 갈등, 인간과 자연생명체간의 갈등, 계급간의 갈등, 인종간의 갈등, 성적 갈등, 국가간의 갈등 등을 지정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극복하고 상생공존질서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 사이에 야기되는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고 상생/공생질서를 이루는 것이 평화이다. 이 평화는 생명간의 정의로운 질서를 근간으로 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太平이라고 하였다. 평화란 우주적 상생질서인 것이다.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담론은 생명체의 무참한 희생의 이야기에서 그 현실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생명체는 우선 과학기술에 의하여 객관화되어 그 주체적 실체를 상실하였고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파괴되어 왔다. 이 현실은 생명과학, 생명공학, 생명산업의 급격한 개발에 따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더구나 근대산업경제는 자연과 그 생태계를 파괴하여 왔다. 생태계의 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고 동식물이 모두 생명공학적 조작의 대상이 되어 있다. 여기서 생명체는 유전자로 파편화 되었고 공학적 인자로 변하였다. 생명체의 통전적 실체는 상실되어 가고 있다.
오늘 수렴 융합된 과학공학체제는 자연적 생명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위적 “인간생명체, 자연생명체”를 조작, 제조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산업경제와 지구시장의 맥락과 밀착되어 있다. 생물공학과 의료공학에서 이런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이런 맥락에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의 통전적 주체성과 공생/상생성을 배제한 생명담론을 생각할 수 없다. 생명체를 보살피고 생명체들의 공생/상생을 담보하는 새 생명담론의 중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 새로운 평화의 담론도 생명체의 파괴의 현실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생명체를 파괴하는 세력은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세력이다. 특히 국가권력의 군사체제는 폭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오늘은 미국이 지구제국을 형성하고 그 군사적 패권을 잡으려는 전쟁행위는 지구 위의 생명체를 근원적으로 파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등은 20세기에 인간생명을 무참하게 파괴하였다. 지난 세기의 냉전체제는 가공할 만한 무기경쟁을 하여 지구 자체를 파괴할 만한 무기체제를 형성하였다. 냉전체제의 붕괴로 말미암아 이제는 지국제국이 그 군사적 헤제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이 제국의 군사적 헤제모니는 새로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1) 전쟁의 개념을 변혁하여 “항시전(Permanent War), 총체전(Total War)”로 전환하였다.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에서 실현되었다. 2) 이를 위한 군사전략 전술 무기체제는 그야말로 전멸전(Omnicidal War)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미국의 대량학살 무기체제의 개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eace Charter 참조)
지구제국으로서의 미국의 군사적 헤제모니는 중동전쟁은 물론 동북아의 상황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미일군사동맹과 안보조약, 한미군사동맹과 안보조약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에 통합되어 있고 중국과 북조선에 대응하고 있다. 이 상황이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고 전쟁의 위험을 항존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군사적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억제하고 생명을 보전하고 평화를 실현 할 것인가?
나) 국가의 역할은 지정학적 평화질서를 유지하는 데 절대불가결의 요소다. 그러나 그 국가는 민주적 주권을 존중하고 민족의 주권을 보전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지구제국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지구시장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개방체제란 국민과 민족의 자주적 주권은 약화될 현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민의 국내적 국제적 역할이 한층 중요하게 부각된다. 시민의 외교적 역할은 생명과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보전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Y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토대로 한 질서와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반도 내에서는 물론 동북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직조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 근대국가권력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 사회적인 정의와 경제적 삶, 문화적 가치의 향유, 종교적 신념을 보존하는 장치로서 수립되었다. 그러나 근대국민국가는 한편으로는 축복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독재, 전쟁, 억압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 따라서 시민의 직접 참여권과 포괄적인 생명권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는 각종 장치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되며 특히 지구제국과 지구시장세력이 국가생활에 지대한 영향과 간섭을 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사회적 권리는 물론 국가는 시민의 참여와 모든 생명체의 상생권을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다) 생명체의 살림살이 즉 경제는 생태계를 틀로 해서 이루어지는 생명경제이어야 한다. 근대서구경제학은 생태계와 인간사회를 완전히 분리하여 경제체제를 이루었다. 더구나 경제적 가치는 추상화 되고 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생명체의 살림살이와는 유리된 메커니즘에 의하여 운영된다. 이것은 근대농업경제도 시장에 종속되고 특히 금융산업은 생명체와는 완전히 독립된 과정으로 경영되고 있다. 따라서 지구적 시장경제체제는 생명경제와 유리되고 또 생태계와 유리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회경제적 차별과 불의는 시각하고 이로 인한 빈곤과 기아는 생명을 파괴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생명경제는 모든 생명체의 상생적 살림살이이어야 한다.
라) 생명체의 삶은 질병에 의하여 왜곡되고 파괴된다. 물론 이것은 빈곤과 기아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생명공학산업의 발전으로 건강과 의료가 시장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체는 건강/의료체제에 종속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생명권은 여기서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의료계나 생명공학에서는 때로는 임상실험과정에서 인간이 희생되고 무수한 동물들이 그 실험과정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 생명체의 보살핌이 시장경제의 족쇄에 걸리게 된 것이다.
마) 인간사회는 생태계와 분리되어 취급되었다. 넒은 의미에서 모든 생명체의 생태사회는 하나의 상생공동체이다. 서구의 생물학/사회철학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적자생존론, 약육강식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모순론이 지배하였다. 따라서 사회는 당연히 경쟁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철학이 근대사회를 지배하였다. 이것은 동양의 상생론에 의거하여 생태사회학의 새 담론이 창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양의 생태학 자체가 적자생존론에 기초하고 있기에 그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동양의 생태우주로론은 상생/상극의 균형을 가진 것으로서 상생이 그 근간이 되어 있다. 약자와 강자, 부자와 빈자, 능력자와 무력자, 남자와 여자 등 모든 생명체는 상생이 그 태극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바) 생명체는 주체임으로 감성이 있고 의지가 있고 의식이 있다. 생명체는 문화적 실체이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물리적으로 축소될 수 없고 감성과 영성을 가지고 있고 문화도 가진다. 문화는 엄밀히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의 문화는 자연과 그 생명체와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생명문화는 생명체 간에 일어나는 상생적 교호작용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상생, 생명주체성, 생명정체성, 생명의식, 생명가치를 중시하는 생명문화는 생명학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 근대 과학적 사고는 이 생명문화를 철저히 배제하거나 물리화학적 요인들로 축소하여 버렸다. 그러나 생명체는 생명개체로 보나 생명공동체로 보나 총체적인 생명체(온 생명)로 보나 살아 있는 실체이다.
사) 생명체는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근대신학은 신과 생명체의 관계를 인간에 국한시켰으나 신은 분명히 모든 생명체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경전에서 우주와 그 삼라만상, 그리고 그 안의 생명체들은 종교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종교는 생명에 대한 중요한 담론의 한 차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의 원동력이 물리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차원에도 그 실체가 있는 것이다. 우주의 생명계에 운행하는 신은 분명히 생명을 창조하고 낳고 품으며 생명체들과 교감한다.
우리는 생명과 생명체의 상생질서인 평화에 대한 새 담론을 탐구하면서 Y의 생명평화가치 실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1) Y는 우선 생명과 평화에 대한 비전을 창출하여야 할 것이다. Y는 예수가 우주의 생명이요 태평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이다. 이 신념은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다. 갈릴리 예수는 죽임의 세력이요 폭력인 로마제국에 저항한 생명의 알파요 그리고 생명의 충만함을 약속한 오메가이다. 이 생명은 우주 삼라만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상생/공생이요 이는 생명의 평화이다. 그러나 이 갈릴리의 비전은 제국들과 유착한 서양기독교역사 속에서 퇴색되었다. Y는 아시아의 다양한 생명의 지혜와 평화의 비전의 전통을 수렴통합하여 미래적인 비전을 창출하여야 한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불교의 정토적 평화, 유교의 태평, 도교의 선계, 동학의 지상천국(후천개벽)을 수렴통합하고 나아가서는 서양의 진보적인 철학사상까지를 아울러 새로운 생명평화의 비전을 창출하여야 한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모든 종교와 철학과의 대화는 이러한 미래적 생명평화의 비전을 창출하는 첩경이다. 파편적 역할의 제약
2) Y는 동북아시아의 생명평화 (Northeast Asian Zone of Life and Peace)권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고 평화의 질서를 이룩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시민교류와 시민연대의 근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Y는 아시아 청년들을 초 교파, 초 종단적으로 초대하여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생활(Work Camp)을 통하여 동북아의 생명과 평화의 질서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공동활동을 하며 생명과 평화의 유대와 연대를 이뤄가야 할 것이다.
3)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동북아의 비군사화와 군대 대신에 평화군의 형성을 위하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작업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동북아의 비핵화, 세계의 비핵화를 필두로 하여, 군축 같은 문제를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전쟁을 불법화”(일본의 헌법)를 논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제안은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전쟁이 인류를 공멸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사실과 한반도는 미국 지구제국과 주변군사강대국을 직면한 상황에서 평화를 군사적으로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비군사화의 논단과 같은 사업은 퍽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작업일 것이다.
4)) 동북아 에코죤(Northeast Asia Eco-Zone)을 형성하여 생명의 상생질서와 평화를 증진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생태질서는 지역적, 사회적/국가적, 대륙적, 지구적 차원을 포괄한다. 동북아지역은 Macro Ecozone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어서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문화적으로 연관성이 깊어서 생태질서에 대한 비전도 쉽게 나눌 수 있고 공동의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 사회적 평화를 위하여 비폭력적 상생관계를 정의와 화해( Justice and Reconciliation)를 축으로 하여 전통적인 사회운동(계급, 인종, 성, 각종 차별철폐운동)을 넘어서 사회생명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보전운동, 생태마을운동, 대체에너지운동, 자원순환운동, 수자원 보전운동, 공해방지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6) 생명정치 Y는 지역사회의 정치문화를 생명문화로 전환하기 위하여 각종의 초당적 시민정치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Y는 지역사회에서 인권, 사회적 권리, 생태적 생명권을 증진하고 생태마을사업, 생태에너지사업, 자원순환사업 등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다.
7) 생명평화를 위한 문화행동(Cultural Action)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에서 생명평화연수원을 운영하여 전문적 인력훈련에 임할 뿐 아니라 문학, 음악, 예술 활동을 지역에서 교회와 학교와 사회단체들과 같이 문화교육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8) 종교적 생명/평화예식(Ritual)을 작성하여 생명평화의 가치를 종교적 차원에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문화, 다종교적 차원에서 생명과 평화를 창출 (Convergence of multi-cultural/Multi-religious vision of life and peace)하는 일이 될 것이다. 종단별로 할 수 있지만 초 종단적으로 종교적 행사를 거행하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생명/평화의 순례와 같은 체험도 좋은 종교적 문화적 행사가 될 것이다.
1) 김용복, 한국생명학연구원, 2008년 한국YMCA전국연맹 간사회(AOS) 겨울연수회 주제강연
“생명과 평화의 가치(김용복).hwp
센터 출판물 "생명평화운동 구상"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