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기쁜 소식인가?
- YMCA와 성서연구
이 윤 희
(AOS 성서연구반, 한국YMCA전국연맹)
‘산타節’이 되어 버린 ‘성탄절(聖誕節)’
며칠 후면 성탄절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비 기호가 되어 버린 성탄절이지만, 그나마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탄생의 의미를 365일 중 단 하루만이라도 되새겨볼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소비기호로서 성탄절은 우리 집에도 거센 폭풍을 몰고 온다. 폭풍의 주인공은 일곱 살, 아홉 살 된 두 딸이다. 이 나이 때의 자녀들을 둔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폭풍의 핵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그 어떤 질문도 아닌, ‘성탄 선물을 누가 주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예수’에 대한 실존의 문제가 아니라 ‘산타’에 대한 실존의 문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성탄절’이 아니라 ‘산타절’인 셈이다.
산타는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그리고 살 수 있을까?
지난 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 딸은 몇 년전부터 ‘산타의 실존’에 대한 믿음을 버리더니, 지난 해에는 자기뿐만 아니라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동생’의 꿈마저도 산산이 부수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나 논리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루돌프 사슴과 산타’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마음과 머리가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섯살 백이 작은 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왜냐하면 ‘울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선물을 갖다 주는 산타’를 버린다는 것은 그 믿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선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는 이런 동생의 눈물어린 저항에 부딪히며, ‘어떻게 해야 하나?’ 도움의 눈짓을 보내곤 했다. 그 눈초리는 ‘아빠는 알고 있잖아? 그런데 왜 사실을 말 안해주는 거야. 동생을 언제까지 바보로 만들려고 그러지?’라고 물으며, 동생의 편을 들어주며 자기만 바보로 만드는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을 담고 있는 듯했다. 올해는 아마 이 폭풍우가 지난 해처럼 심하지는 않을 듯싶다. 막내도 이미, 산타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선물을 기대하는 자기한테 유리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산타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삶 안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이득을 위해 믿음을 가장하는 어른들처럼.
그러나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누구도 계속, ‘산타는 저 하늘에 살면서 네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단다. 성탄절에 네가 원하는 선물을 받으려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부모나 사회의 바람을 투영하거나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산타는 이제 부모가 되고, 가족이 되고, 공동체가 되고 그리고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우주적인 공동체가 된다.
‘목사님, 하나님은 어디에 계세요?’ - 어린 아이로 살아야하는 한국 기독교
흔히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항상 스스로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응답은 무엇인가? 아마도 많은 분들은 ‘산타의 이야기’를 보며, 어린 자녀들을 키웠던 시절의 에피소드와 같은 행복을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을 것이다. 그러나 ‘산타’ 대신 똑같이 ‘하나님’을 질문한다면 자못 심각해진다.
산타를 믿는 여섯 살배기 딸에게는 ‘하늘에 계신단다’라는 대답은 아주 훌륭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큰 딸에게는 바보같은 대답이 될 것이다. 이미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하게 나오는 답이 ‘너의 마음 속에 항상 너와 함께 살아 계신단다’라는 대답이다. 우리에게는 유치한 대답일망정, 어린 아이게는 그 또한 정답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의문도, 궁금증도 유발하지 않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학생에게는? 제법 머리가 굵어진 청년들에게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하나? 그 다음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답은 의외로 쉬운 것 같다. 이때부터는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용납하지 않으면 된다. 오직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강요하는 수밖에.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를 자꾸 질문하고 파헤치는 것은 불신이고, 시험에 빠진 나쁜 일이라고 주장하면 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이 응답할 때까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찾고 주문을 욀 것을 요구하면 되는 것이다. 너의 믿음이 온전해져 하나님이 응답할 때까지. ‘응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항상 너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라 질책하며. 하나님을 찾기 위한 이 같은 주문은 ‘기도는 삶이며, 말하는 것이 아닌 듣는 것(케에르케고르)’이라는 말을 비웃으며, 우리가 계속 ‘신앙적으로 유아의 삶’에 머물러 있기를 강요한다.
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이미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산타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선물을 기대하는 자기한테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섯 살 어린이’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산타를 기다리는 여섯 살배기 기복신앙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이들에게 ‘성탄절’이 ‘산타절’이 된 것처럼,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 실체로서 예수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교회와 신도들에게 福을 주는 기제, 작업가설로서 예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제 어린이는 100년의 세월을 먹고 어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탕으로 얼르며 어린 시절의 색동저고리를 입고 놀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한국 기독교에 대한 불신자들의 악의적 비난일까?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기쁜 소식(福音)인가?
이 글에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을 토론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다만 ‘평신도운동체로서 그리고 기독교사회선교단체로서 YMCA 운동의 정신사적, 문화적 배경이랄 수 있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새로운 레비아탄(Leviathan)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와 초국적기업, 제국을 옹호하고,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하며 희망격차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는 기독교는 진정 우리가 찾는 예수의 길인가?’
‘한 멕시코 시인의 표현처럼 “고통의 대양 위에 부자 섬 몇 개가 떠 있는” 슬픈 세상에 기독교는 아직도 복음인가? 세계 곡식 총생산량의 47%를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여 육류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반면, 다섯 살 미만의 굶주리는 어린이만 2억명이나 되며, 매일 4만 여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현실에서 ‘자비와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 60년대 인류의 상층 20%는 하층 20%보다 약 30배의 수입이었지만, 신자유주의를 경험한 그 후 30년이 지난 97년은 90배의 수입 차가 커지고, 빈부격차는 3배 더 커진 상황이다.’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죽어가는 청소년들을 보며,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특수고와 자립고를 주장하며, 사교육과 입시경쟁을 부추키는 기독교는 우리가 찾는 예수의 기독교인가?’
‘물 부족에 의한 기근과 파괴, 자원과 에너지 고갈 그리고 자원전쟁, 생물종 다양성의 파괴와 심각한 지구 온난화 등의 현실 앞에서 생명이신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가?’
‘경남 창원에서 2명의 장애 아들을 키우느라 생활고를 겪던 30대 가장이 직장에서 실직까지 당하자 장애인 아들 2명을 차에 태워 불을 질러 숨지게 한 사건(연합뉴스, 07.12.7)을 보며, 무한경쟁의 소비로만 지탱이 가능한 사회에서 평화의 하나님을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기독교는 무엇으로 소망을 말할 것인가?’
‘한국 기독교는 이미 선악과 문자주의로 재단되는 프로크루테스(procrustes)적 교회가 되어, 그 침대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볼테르의 지적처럼 “당신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것들을 믿게 할 힘을 지닌 사람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잔학한 행위들을 하게 할 힘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지 모른다.’
본회퍼는 “우리가 신(God)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이 세계의 무신성(無神性)에 대해서도 조금도 은폐하지 않고 남김없이 속속들이 조명하는 방식으로 신을 말해야 한다. 성숙한 세계는 성숙하지 못한 세계보다 훨씬 무신적(無神的)이며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더 가깝다”,
“우리의 성숙한 미래는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의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원하신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라는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 of God) 없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계속 서 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없이 살아간다."라고 말바 있다.
하나님이 不在한 세상에서 기독교는 기쁜 소식으로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도구로 세상에 보내진 YMCA가 이에 대한 응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도 쉽지 않은 질문이다.
‘너나 잘하세요!’
인정하기 싫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국 기독교에 대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작 예수님처럼 사는 데는 관심이 없다’, ‘理性과 知性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복(祈福)과 그들만의 잘 사는 교회, 그들만의 리그를 꿈꾸는 집단’,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선민의식으로 뭉친 폐쇄적인 유대인 종교로 회귀하는 집단’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독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뼈아픈 지적이다. 이제 청년과 식자층은 한국 기독교를 등지고 있다. 이미 등져있다. 기독교로부터 현실과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어떤 기대와 희망보다는,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문화적 문법으로 교회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구도 한국 교회가 가장 못된 목사들의 저열한 종교가 아니라, 예수가 실현하고자 했던 완전한 사랑을 설교하고 실천하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토양에서 평신도 기독교사회선교단체로서 YMCA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 어떤 책임과 응답을 내놓을 것인가? 물론 한국사회 기독교는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있다. 노숙인, 장애인, 버려진 아이들, 외국인노동자 등 ‘작은 자’ 곁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라는 웃지못할 질문에 기독교인들은 무슨 답을 할까? 사람들은 “너나 잘 하세요”라고 답한다.
성서연구는 YMCA 운동의 새로운 사람과 지도력을 찾는 일
‘사람들이 떠나는 한국 기독교. 이를 토양으로 하는 YMCA’,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지금의 세계 기독교와 교회가 조만간 멸망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증언과 질문을 내놓고 있다. 일찍이 존 로빈슨은 ‘신에게 솔직히’(1936년)라는 저서를 통해, 유신론적 기독교에 대해 파란을 일으켰고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부재한 성숙한 사회에서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보며, ‘도대체 어디에서 하나님의 편재와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 ‘문자와 관념에서 찾는 하나님’이 아니라, ‘행위와 삶의 관계에서 찾는 하나님’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 교회도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자주의와 맹목적 신앙으로 단련된 한국 기독교에 소망이 있는가? YMCA가 평신도운동체로서 한국 기독교에 대한 성찰과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침몰해가는 한국 기독교와 함께 기독교단체로서의 YMCA도 ‘회한(悔恨)의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청년이 등진 한국 기독교에서 청년단체로서 YMCA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한국 기독교의 의미와 미래가 없다면, YMCA 존재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YMCA 성서연구는 침몰해가는 배의 한 줄기 생명줄과 같은 작은 노력들과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모든 지역에서 YMCA 성서연구에 대한 작은 노력과 불씨들이 만들어지고, 행위로 증거되는 YMCA의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노력은 한국교회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한국YMCA가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증거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내적 성찰도 담아가는 노력일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꾸짖음 이전에 “스스로 잘하기 위해!”
“나는 기독교인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읽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들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말씀에 반하는 바를 읽지 않도록 좀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 ‘아미쉬의 목소리로 듣는 그 치열한 삶의 기록, 아미쉬 공동체 (들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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