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한 한국YMCA 분권과자치위원회의 제안
행정구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지방자치를 발전시키고 효율적인 행정체계를 갖추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현재의 행정구역이 행정의 효율성, 지방자치 실현, 자립과 성장동력 미비, 균형발전 저해 등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한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들은 응당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일부 국회의원과 정부를 중심으로 행정구역개편의 방향과 형태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합의없이 자치단체간 통합을 부추기고 이에따라 기초자치단체들간의 경쟁적인 통합추진 움직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 상황은 깊은 우려를 낳게한다.
지난 8월 26일 행정안전부는 자율통합 확정 기초단체에 특별교부세 50억 지원, 통합자치단체 추진사업에 대한 국고보조율 10%포인트 상향 등 지원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특별교부세는 부족한 지방재원을 보완하고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합리적으로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 통합을 이유로 특정지역에만 특별히 지원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지원대책들도 각각의 고유한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간 통합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왜곡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추진절차를 보면 2~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만 동의하면 주민투표없이도 자치단체 통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적인 주민결정권을 무시한 것으로서 지방자치의 근본을 흔드는 독단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최근 행정구역 통합이 급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의 시급한 필요라기 보다는 국회의원들과 중앙정부의 이해때문이며 국면전환용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행정구역 개편은 그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충분히 공유된 후, 바람직한 자치발전의 관점에서, 자발적인 주민들의 의사가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본 위원회는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하여 몇가지 원칙과 방향을 제안한다. 또한 발전적이면서도 민주적인 행정구역개편 추진을 위해 짚어지고 검토되어야 할 논점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 첫째 행정구역개편은 지방자치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지역주민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사가 존중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정구역개편의 밑그림도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중앙정부가 지역여건과 상관없이 인센티브 지원을 빌미로 인위적이고 일방적인 통합을 강제하는 것은 추진지역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집을 저해하고, 통합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 또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통합의 비용적 효과도 통합추진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갈등 비용이나 통합에 따라 추가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 둘째 행정구역개편은 풀뿌리 생활자치를 강화하고 지역의 소중한 전통과 정체성이 존중․계승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인구가 약 20만명으로 선진국에 비해 이미 월등히 큼에도 불구하고 70만~100만 전후의 거대규모 통합지방자치단체를 만들 경우 풀뿌리 생활자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큰 규모의 기초자치단체는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생활의 문제를 챙기기도 힘들고 주민 불편도 가중된다. 지역주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생활자치도 어렵게 한다.
또한 기초지방자치는 지리적 환경을 근거로 오랜 역사속에 형성된 사회․문화․생활 공동체이다. 이를 도외시하고 행정적 편의성만을 우선시한 자치단체통합은 심각한 주민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장 자치단체가 통합했을 때 지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청사의 입지는 어디여야 하며 공공기관은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소지역간 심각한 주민갈등 요소가 발생할 것이다.
- 셋째 행정구역개편은 자치단체의 지방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경제환경에서의 자립적 발전토대를 갖추고 국내에서의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와 일부정치권에서 제안하는 도의 기능을 60-70개의 통합시로 분산하는 방안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다층의 행정체계를 단순화해 행정효율을 높이고, 기초자치단체간 불필요한 경쟁과 행정중복으로 인한 낭비요소를 없애겠다는 취지에도 일견 합리적 요소가 있다. 그러나 광역정부의 폐지로 그나마 갖고 있던 지방의 자치역량은 축소되고 중앙정부의 통합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과 통제가 강화될 것이 우려된다. 또한 이는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를 통합하여 지역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선진국들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 방향이다.
이와관련 여러 전문가들과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광역시와 도’, ‘도와 도’를 통합한 6~7개의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획기적으로 이양하여 지방자치 발전을 돕고, 자립경제권으로서 세계에 적응하도록 하며 국가내에서의 균형발전도 도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 덧붙여 행정구역 개편의 논의과정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 목적과 내용, 결정방식, 효과 등과 관련한 구체적 쟁점들이 충분히 짚어지고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이 논의 과정에서 점검되어야 한다.
․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주민이 잘 살게 되느냐? 주민이 편리해지느냐?
․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경제의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는가?
․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요소
․ 행정구역 개편과 중앙정부의 권한이양 계획
․ 행정구역을 통합할 경우 읍면동, 기존 자치단체구역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
․ 기존에 행정구역통합을 했던 사례(시군통합,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대한 평가
․ 행정구역 개편의 구체적인 절차 (주민들에 대한 정보전달 및 의견 수렴 방법, 주민투표 절차 등)
․ 행정구역을 통합한 이후의 모습(지명, 관청소재지, 중요거점, 상대적소외지역에 대한 대책 등)에 대한 합의 방식
․ 행정구역 개편의 세계적인 추세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확인
․ 행정구역 통합 지역과 통합하지 않는 지역간의 불균형 문제
행정구역 개편은 국가와 지역의 현재와 미래 발전방향을 좌우하는 매우 중차대한 과제이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의 추진과정과 이후에도 심각한 주민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충분한 공감대 없는 정책을 조급하게 추진한다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좌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의 청사진과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폭넓은 공론의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각 지역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지리․문화․역사․경제적 여건을 토대로 지역발전을 바라는 건강한 주민의사가 존중되어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 민주적이고 활력있는 행정체계를 갖추며, 주민의 삶의 질에 복무하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