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을이 왔네요.
지구 온난화니 아열대화니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가을이 절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한달이건 일주일이건 가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올 것은 오고 가야 하는 것은 가고야 마는 것이 이치인가 봅니다.

최근에는 죽을 때까지 YMCA를 할 것 같아서 
여기를 떠나야 겠다고 여러번 결심했었는데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제가 느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나를 원하지 않는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간성 때문에,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경력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씁쓸하지만 현실을 받아드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며칠전 두분의 어른이 저에 대해서 내린
상반된, 그러나 서로 통하는 두가지 평가를 들으며
두 가지 모두 제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배째라는 식이죠. ㅎㅎ)

두번째, 나도 YMCA를 떠나는 것이 매우 두렵다...
5년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거의 아무 두려움이 없었는데...
병을 앓고 나서인지 늙어서인지
이제는 YMCA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두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세번째, 이제는 YMCA간사가 아닌 다른 존재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YMCA간사, 실무자로 살아왔고
저의 존재양식도 그에 매달려 있었고
그 존재 양식이 저의 사람됨이나 행동양식을 규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내가 YMCA밖에 있든 안에 있든
"이혜정 다운"존재양식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존재 양식의 탐색을 상당하게는 성서에 의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소 위안이 됩니다만...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 신뢰했던 사람들, 의지했던 사람들...
YMCA안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과는
평생 이어질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긴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또 그 세월의 끈이 그들과 저를 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고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은 타인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과거의 사랑과 신뢰와 의지한 정도가 컸던 만큼
실망과 분노, 원한의 골도 깊은 것 같습니다.

제가 YMCA간사라는 존재양식을 벗어던진다면
그 모든 관계에서 좀 더 자유롭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걱정은 많은 편이지만
한번 결정하고 나면 겁도 없고 숨기는 것도 없이 돌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절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난 돌같은 저를 오랫동안 보듬어준 YMCA와 선배들, 후배들께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되니까... 정말 반성하고 싶어지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