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YMCA 소개



1. 19세기의 상황과 ‘복음주의’ 각성


19세기는 YMCA가 태동된 시기였다. YMCA는 어느 날 갑자기 한사람의 선언을 통하여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YMCA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YMCA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19세기의 다각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19세기는 우선 인간이 과감한 가설과 관찰, 실험을 구사하여 자연환경의 탐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시대는 생물학과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이 주목받았다. 인간의 증가 일로의 지식은 산업혁명을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인구의 도시집중화를 가져왔다. 결국 도시화는 자본주의, 개인기업, 공개적 경쟁, 방임주의 경제 등을 파생하였다. 서구의 진보는 ‘낙관주의’의 기풍을 낳았다. 인류는 전진을 계속할 것이며 인류는 재앙을 극복하고 일찍이 상상도 못하였던 행복한 미래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9세기는 다양한 사회조직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데모크라시’의 맥박이 유럽대륙, 영국, 아메리카, 캐나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에 약동하였다. 민주주의의 개념에는 자유방임(laissez-faire)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이를 기피하는 것도 있었다. 이 자유방임에의 반동으로 생긴 이념들을 일괄하여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그것은 경제적 기회의 균등과 정치적 평등이 주장의 골자였다. 사회주의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이름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였다. 그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제휴하여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 자본론이 출판된 이후 ‘마르크시즘’이란 명칭이 사회주의 표준처럼 온 세계를 누볐다. 마르크스는 대다수의 비참위에 살찌고 있다고 판단된 모든 제도와 계급 - 특히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불타 있었다. 그는 이를 외면하는 교회를 비난하였다.

그 외의 사조로서 러시아 사람 바쿠닌이 주장한 직접행동을 내세워 노동자는 테러와 태업을 수단으로 하여 국가, 기성계급, 전통 등을 박멸해야 한다는 ‘무정부주의’와 집단행동을 통하여 조합원들의 생활개선을 꾀하는 ‘노동조합’ 운동이 발생하여 유포되었다.

19세기는 이밖에도 유럽인들의 해외 팽창을 가속화시켰다. 미국, 캐나다, 라틴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로의 이민이 19세기의 일대 장관을 이루었으며 특히 기계의 발명, 산업혁명, 상업적, 정치적 팽창 및 부의 성장 등과 아울러 식민지가 각처에 건설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들이 함축하고 있는 허다한 요소들이 기독교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창세기의 창조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포이에르바하(Ludwig Andreas Feuerbach, 1804-1872)는 하느님은 인간의 양심 또는 무의식적인 내적인 요구의 투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노예도덕의 상속자로 규정하였다.

사회재건을 의도하는 대중운동들은 거의 모두가 암암리에 또는 공개적으로 반기독교적이었다. 특히 그것은 마르크스의 이름과 연결된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속주의적 내지는 반종교적 문화의 충격에 견디어 내지 못하고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염려와 기대가 당시의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 편만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는 다른 전통종교들이 움추려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독교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큰 부흥을 보여주었다. 이 종교부흥은 기독교의 세 큰 지체 동방정교회, 로마카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제교회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로테스탄트 세계에서 정신적 각성의 경험은 그 열기와 다양성에 있어 더욱 두드러졌다. 즉 프로테스탄트 제교파를 관통한 정신적 각성은 한편으로는 두 카톨릭 교회와 더불어 기독교의 역사적 신앙의 수호에 동참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YMCA와 YWCA 등 많은 선교단체의 발족, 기독교 신앙을 비기독교인들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의 창출, 종파적 교파적 경계를 초월해서 이룩하는 협력체계의 창설, 성서, 신학, 교회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법의 개발 등을 보여주었다.

19세기의 이러한 각성운동은 프로테스탄트의 어느 한 지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성의 교파 종파적 계열을 총 망라한 것이었다. 그 지도력은 프로테스탄트 제교파에서 고루 배출되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19세기 중반에 활약한 챨스 피니(Charles G. Finney,1792-1875)와 그 종반에 활약한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였다. 피니는 북아메리카와 해외에서의 부흥집회를 통해 그리고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프로테스탄트 세계에 큰 부흥을 일으켰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사실은 바로 찰스 피니의 영향 아래서 YMCA가 탄생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죠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 1821-1905)는 평소 피니의 두 저서, 「자각적 그리스도인을 위한 강화」와 「종교부흥론」을 통하여 피니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피니의 영국제도 전도여행시에는 영국 내에서의 그의 전도집회에 거의 모조리 참여하여 많은 신앙의 감화를 받았다. 이리하여 윌리엄즈는 피니의 압도적인 신앙의 영향 아래에서 YMCA를 창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조지 윌리암스와 런던YMCA


세계YMCA 운동의 기원은 공식적으로 1844년 6월 6일,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와 그 동지들에 의하여 창설된 런던YMCA에 두고 있다. 조지 윌리암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매우 성실하고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1821년 영국 남부의 애쉬웨이(Ashway)에서 성공적인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35년 글로인스쿨(Gloyn School)을 졸업하자 열 다섯의 나이로 브리지워터(Bridgewater)의 홈즈(Holms)직조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작은 기도모임을 주관했다. 1841년 스무살 되던 해에 그는 런던의 힛치코크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상회의 조수점원이 되었다. 그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1841년 하느님의 섭리로 나는 런던에 왔다. 그리고 세인트 폴즈 쳐치야드(St. Paul's Churchyard)의 어느 상점에 직장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멋대로 분망하게 보냈으며, 여기저기 오락장엘 드나들었다. 저들의 말투, 부도덕함, 술타령 등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상점에 취직했을 때 130-150명의 조수점원이 있었다..... 나는 5,6명의 점원들과 한 방을 썼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 이들을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은밀한 기도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회사분위기는 그러한 모임을 공식화할 수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1843년말 어느 날, 기도회를 갖던 그들은 의롭고 뜨거운 젊은이들의 모임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이 뜻을 확산시켜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1844년 6월 6일, 열두명의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조지 윌리암스의 하숙방에서 “청년들의 기독교협회(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YMCA - 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하였다. YMCA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에드워드 발렌틴은 그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겨놓았다.


“1844년 6월 6일, 목요일, 조지 윌리암스의 방에서 만나 한 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그 목적은 종교적인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구세주의 왕국을 주변 사람들 사이에 확대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들 창설자 열두명의 종파적 배경이다. 감리교, 독립교, 장로교, 성공회에 제각기 세명씩 골고루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에 YMCA의 에큐메니칼 정신이 이미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이들의 창설초기 주된 프로그램은 성경연구와 기도회였다. 그러나 회세가 점점 확장되면서 프로그램도 인문, 자연, 종교에 관한 공개강연회, 출판사업, 도서실 설치 등 다양화되었다. 대상도 처음에는 10여개 점포의 젊은이들이었던 것이, 일반 청년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활발한 청년운동으로 발전해갔다. 창설 4년 뒤인 1848년에 런던에서 100명의 회원이 활동하였고, 지방에서는 520명의 회원이 가입하였다. 이러한 회세의 놀라운 확장에 따라 “직조업과 다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종교적인 예배와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영적 조건을 향상 진흥시키는 것”으로 목적을 내세웠던 초기정책을 수정하여 “기독교청년회의 목적은 젊은이들의 영적, 정신적 상태의 개선”과 “저들의 지적 개선”을 도모한다고 발전적으로 목적을 확대하였다. 나아가 그들의 “영적, 정신적 개선으로, 그들이 각각 부름 받은 곳에서 경건회, 성서연구, 상호개선클럽, 공개강연, 기독교문서의 보급, 그리고 성서에 의한 다른 여러 방법들을 통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3. YMCA 운동의 확산


런던의 한 구석에서 조용하게 시작된 청년 갱신운동이 구미사회로 확산되는 계기는 1851년 5월 1일에 런던 하이드 파크 크리스털 궁전에서 개막된 런던세계박람회였다. 런던박람회는 근대산업사회의 출발을 알리는 획기적인 행사였다. 세계 각처에서 1만5천개의 생산업체가 참가하여, 장장 10마일에 걸친 광장에 자신들의 생산품을 전시하였고, 전시기간에 세계에서 6백20만명 이상이 참관한 기록적인 박람회였다.

런던YMCA는 이들을 대상으로 종교, 사회, 과학 등 여러 분야의 강연회와 이들에게 배포할 팜플렛을 마련하였다. 강연회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이들에게 뿌려진 35만 2천부의 팜플렛은 “YMCA의 존재의의를 전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런던박람회가 열렸던 해(1851년) 연말에서 1854년 북미YMCA 연합회가 결성되는 시기까지 3년에 걸쳐 세계 250여개 도시에서 YMCA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파리 세계YMCA 대회가 열리는 1855년에는 세계 338개 도시에서 YMCA가 존재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등지를 비롯하여 호주의 멜보른, 시드니, 호바트 타운 그리고 인도 캘거타에 YMCA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으며, 북미 대륙에서도 캐나다의 몬트리얼, 미국의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에서 YMCA의 불길은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YMCA는 런던만의 YMCA가 아닌 세계의 YMCA가 되어가고 있었다. 런던YMCA에 윌리암스와 쉽톤(Shipton-총무)이 있었다면, 파리에는 뻬로(Perrot)와 쿡크(Cook)가, 제네바에는 앙리 듀낭(Henry Dunant)이, 워싱턴에는 랭던(Langdon)과 스티븐슨 (Stevens)과 같은 지도자가 YMCA 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특히 북미YMCA 운동의 확산은 눈부신 것이었다. 예컨대 1851년 12월 29일에 창설된 보스턴 YMCA는 창립한지 5개월도 채 못되어 회원이 1,2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또 1852년 6월 29일에 창설된 워싱턴YMCA는 윌리엄 쵸시 랭던의 지도아래 발전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는데 1852년 9월에 이르러 북미YMCA 연합회의 결성을 주창하기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1854년 6월 7일 버펄로에서 19개 북미도시 YMCA 대표 39명이 모여 “북미 및 영령(英領)YMCA 연합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런던YMCA 제 8차 연례보고서 (1852년)에는 이런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1844년 그날에, 1851년에 이르러 YMCA가 수많은 영혼에 대한 은총의 채널이 되리라 짐작이나 한 사람이 어디 있었으랴. 그것이 프랑스, 스위스, 독일의 젊은이들 일단을 생기차게 하고,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형제들을 일깨워 수많은 영혼들을 죄악에서 건져내게 되리라 생각이나 한 사람들이 누구이랴.”


4. 파리 세계YMCA 대회


워싱턴YMCA의 지도자 랭던은 1854년 10월 23일자로 파리YMCA 지도자 쿡크에게 보낸 편지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 있었다.


“ 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비록 우리들이 스웨덴이나 이태리, 영국이나 스위스, 독일이나 네덜란드, 프랑스나 아메리카, 그 어디에 살고 있든지, 우리 모두가 다 하나가 됩시다 ”


이것은 유독 랭던만의 소망이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뜻을 같이하는 세계YMCA의 모든 지도자들의 공통된 바램이요, 목소리였다. 따라서 파리YMCA의 회장인 쿡크는 “모두 하나가 되자” 는 목표를 앞세워 런던YMCA의 윌리암스를 설득하고, 제네바YMCA의 듀낭과 워싱턴YMCA의 랭던의 협조를 얻어, YMCA 세계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준비위원회는 1855년 3월 21일에 쿡크의 명의로 세계YMCA들의 대표를 파리로 초청하는 초청장을 발송하였다. 이 초청장 문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여 .... 우리들의 목적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로 하여금... 서로 만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함께 덕성을 기르며, 우리들 자신의 구원과 우리들의 손이 미치고 있는 곳에 있는 젊은이들의 구원을 추구하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을 공동으로 연구하고자 합니다. .....”


드디어 역사적인 세계YMCA 대회는 1855년 8월 20일 - 24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대회에는 세계 338개 YMCA의 10%에 해당하는 38개 YMCA에서 파견된 대표 99인이 참석하였다. 회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애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비공개리에 진행되었다. 자유로운 토론과정에서 특히 스위스의 라제(Laget)와 독일의 뒤르젤렌(Durselen)의 발언은 크게 주목받았다.


“ 우리들 (YMCA)과 교회와의 연결성 문제는 하나의 막중한 중요성을 지닌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하여 더없이 민감하다. 우리들은 때로는 오해를 받았고 혹심한 비난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회에 우리에게는 교회적 성향 (제도교회가 되려는 의도)이 추호도 존재하지 않음을 천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교회에 관하여는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 원칙이란, 우리는 하느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 (이 하느님의 교회는 오늘날 제 교파교회로 찢겨져 있다) 그리고 결코 어느 특수 관점을 전파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분열된 교회(Church)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하나인 그리스도 교회(Christian Church)를 인정한다.... 교회의 통일성 회복을 목적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은 우리들의 심각하고 열렬한 확신이다. ” (라제)


“ YMCA는 첫째,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기독교 피난처로서 설계되어 있다... 둘째, 그것은 기독교적 인격도야의 장소이다. ... 셋째, 그것은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장소이다.... 넷째, 그것은 기독교를 사회생활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설계되어져 있다.... 항상 직장을 찾아 이동하는 견습공들 또 그 밖의 젊은이들에게 가정이 되어주는 기독교기숙사 등이 그 구체적 보기가 될 것이다....” (뒤르젤렌)

이렇듯 그리스도와 청년들을 위하여 일하는 순수의지가 대회장을 가득 채웠을 때, 돌연 미국 대표 스티븐스이 아무도 예기치 못한 제안을 내 놓았다. “여러분, 우리 이 자리에서 세계 YMCA의 연맹체를 만듭시다 !”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각국 대표들 가슴속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이 제안은 열렬하게 받아들여졌다. 연맹체 형성을 위한 스티븐슨의 헌장초안을 수정한 모니에(Monier)의 초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엄숙히 만장일치로 표결하였다. 이 대회는 쿡크 등 7인을 글귀수정위원으로 택하여 마지막 날 제 7차 회의에서 발표케 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YMCA 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된 “파리기준(The Paris Basis)” 이었다. 그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파리기준


 유럽과 미국의 여러 YMCA 대표자들은 1855년 8월 22일 파리에서 대회를 소집하고 여기 참석하였다. 우리는 그 원칙과 활동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느끼고, 그들 각회(各會) 사이에 현존하는 일치를 상호 인정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우리는 각회의 독자적인 조직이나 활동의 양상에 대하여 독립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한 연합회의 창설을 권한다. 이 원칙은 장차 본회의 회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 기준이 될 것이다.


“기독교청년회는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구주로 믿어 그 신앙과 생활에서 그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하나로 뭉치고 또 그 힘을 합하여 청년들 가운데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파리기준”의 역사적 중요성은 세계YMCA 운동의 구심체가 될 세계YMCA 연맹의 형성을 가능케 하였다는것 외에도 향후 세계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의 고전적인 원칙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이요 구세주로 믿는다”는 이 “파리기준”은 1895년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헌장안에, 1898년 세계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World's YWCA)헌장안에, 그리고 그 뒤, 1927년의 “신앙과 제도운동(Faith and Order Movement)”과 이를 통하여 형성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헌장안에 기준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5. 제네바 세계YMCA 대회(1878) 이후


187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던 세계YMCA 대회는 세계YMCA 운동의 구심력과 지도력이 확립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발전의 속도를 더해가고 있던 세계YMCA는 그 당시 이미 런던의 지도력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운동체로 성장되어 있었다. 따라서 연맹체의 사령탑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할 필요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대회는 연맹이사회(The Central International Committee - 뒤에 The World Council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름)의 설치를 결의하고, 연맹 초대총무에 스물셋의 젊은이 샤를르 페르노(Charles Fernaud)를 임명하였다. 젊고 진취적인 지도력을 형성, 세계YMCA 운동의 새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또 하나, 이 대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폭발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던 북미YMCA들의 강력한 영향력이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경이적인 기술적, 과학적 진보와 그 물결을 탄 미국YMCA의 놀라운 발전속도였다. 넓은 활동공간과 수많은 유급간사들을 확보하고, 대학생, 철도노무자, 농민과 도시인의 특수요청에 수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YMCA들로 다른 세계의 YMCA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세계연맹이 세계적 운동체로서 구실을 본격화하게된 것은 1888년을 전후하여 YMCA운동이 구미 이외의 지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그 시야를 넓히게 되면서부터였다. 중심역할은 YMCA의 학생사업이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 기수는 두 사람의 학생부 간사, 루터 위샤드(Luther Wishard)와 존 알 모트(John R. Mott)였다.

위샤드는 1886년 미국 학생YMCA가 마운트 허먼(Mount Hermon)에서 개최한 세계학생수련회에 참가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수련회는 19세기의 대부흥사 무디(D.L. Moody)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여기서 세계선교를 위한 “학생의용단(SUM)”이 창설되었다. 위샤드는 소명을 받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미국의 존 와나메이커 등 독지가의 재정적 뒷받침을 얻어 세계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대전도 여행에 뛰어들었다. 그의 대학생 전도여행은 45개월(4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러한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YMCA운동의 세계적 확장을 가속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모트는 위샤드의 후임으로 학생부 간사에 취임하였다. 그는 코오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으며 재학시절 영국의 유명한 크리켓 선수인 스타드(J.E.KI. Studd)의 강연을 듣고 자기 생애를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스타드는 무디의 감화로 회심한 사람이었다) 학생부 간사로서 모트의 활약은 매우 눈부셨다. 그의 지도하에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이 창설되었고, 국제선교연맹(IMC)이 조직되었고, 마침내 에큐메니칼 운동의 총본산이 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탄생될 수 있었다. 모트는 윌리암스를 이어 세계연맹의 회장이 되었고(1926). 1947년 고령으로 은퇴할 때까지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세계연맹은 그에게 “명예평생회장”의 영예를 수여하였다.

6. YMCA 주체성의 위기와 자기 확인 과정 (1955-1973)


1955년 세계YMCA연맹 100주년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YMCA운동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연맹결성 100년에 이르는 기간에 YMCA는 실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거대해진 기구와 조직은 운동의 경직화와 타성화속에 신학적 반성없이 발전시킨 프로그램의 다양화는 목적의 모호성과 사업우선의 혼란을 가져왔다. 이러한 자기비판과 자성이 대회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대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 “파리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100년 전에 쓰여진 “파리기준”은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많은 격론끝에 “파리기준”은 재확인 되었다.

그러나 1969년 노팅검 세계대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중요사안으로 제기되었다. “YMCA 주체성의 위기”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대회 직후 열린 세계YMCA연맹 회장단위원회(The President's Committee)는 “파리기준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28개국에서 선발된 28명으로 위원회를 구성케하여 파리기준 문제의 연구를 진행케 하였다.  ‘특별위원회’는 세계 각국YMCA와의 서면연락과 수차에 걸친 연구모임 끝에 세개의 대안을 작성하였다. 제 1안은 해명서를 수반하여 “파리기준”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고, 제 2안은 “파리기준”을 현대인이 수용할 수 있는 용어로 수정하는 것이며, 제 3안은 “파리기준”을 폐기하고 이를 새 기준으로 대체하는 개정안이었다.

1973년 7월, 아프리카 우간다의 캄팔라(Kampala)에서 “주체성과 사명”(The Identity and Mission)이라는 주제로 세계YMCA 대회가 개최되었다. 58개국으로부터 480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이 역사적인 대회는 열띤 토론 끝에 “파리기준”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파리기준”의 보존을 주장한 제 1안에 수반되어 있는 ‘해명서’를 “캄팔라 원칙” (The Kampala Principles)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캄팔라 원칙


파리기준은 그리스도가 YMCA의 중심임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그러기에 YMCA는 모든 종파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단결시키는 범세계적 교의체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YMCA가 하나의 개방적인 회원정책을 가짐으로써 종교, 연령, 성, 종족, 사회적 신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포섭한다는 사실은 파리기준의 정신에 일치한다.

파리기준은 일개인의 YMCA 회원자격을 규정하는 조건으로서 마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세계연맹의 정회원인 각국 YMCA의 자유재량에 일임하는 배려가 되어 있다.

파리기준은 각국의 정회원 YMCA가 각자의 목적을 다른 용어로써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보유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국의 YMCA는 자기들의 봉사의 대상자들의 요구와 염원에 보다 더 직접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하여서 만들어진 YMCA의 목적은 반드시 세계연맹에 의하여 파리기준의 정신에 일치하는 것으로 인준되어야 한다.

오늘의 세계를 사는 YMCA의 성격을 인식할 때, 파리기준의 정신을 천명하는 이 행위는, 각양각색의 YMCA들과 저들의 회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동역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같은 명령에 복종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된다.

(1)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와 공정이 주어지기 위하여 일한다.

(2) 민족간, 민중간의 제 관계가 사랑과 이해를 통하여 운전되는 특징을 가진 환경을 만들고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한다.

(3) YMCA와 사회 안에서, YMCA산하의 조직체들과 기관들 안에서 성실과 깊이와 창의성이 용납되는 조건들을 만들고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한다.

(4) 기독교적 경험의 다양성과 심오성을 실증하는 지도력 및 프로그램의 표본을 발전시키고 또 이를 유지한다.

(5) 전인적 인격의 개발을 위하여 일한다.


이 대회에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주요사항들이 건의되었다. 그 중에는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프로그램의 우선편성을 재인식할 것, YMCA의 난민사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것, 회원제도 및 지도력에 관한 연구의 기회를 마련할 것, 사회문제에 대한 YMCA의 태도정립 작업에 착수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7. 다함께 가꾸는 창조의 세계

   - 서울 세계YMCA 대회 (1991) -


1991년 8월, 서울에서 “다함께 가꾸는 창조의 세계(Renewing God's World - Together)”라는 주제로 세계YMCA 대회(The 1st World Assembly of YMCAs)가 개최되었다. 종전에는 세계대회가 총회와 구별되지 않았고, 매 4년마다 열렸는데, 1985년 덴마크대회에서 헌장이 개정되어 세계대회는 6년에 한번씩, 세계총회는 3년에 한번씩 개최토록 하였다. 따라서 서울대회는 새헌장에 따라 제 1차세계대회가 되었으며, 아울러 제 12차 세계YMCA 총회(The 12th World Council of YMCAs)도 동시에 개최되었다.

서울대회는, 최근 YMCA가 부활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104개국에서 모두 1,003명의 각국 YMCA 대표들이 참가한 매머드대회였다. 세계YMCA 대회 참가자들은 오늘 인류가 공동으로 겪고 있는 범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들 포럼에서 빈곤과 개발, 평화교육, 장애자문제, 환경과 개발, 인종문제, 난민과 이민자문제, 건강과 보건, 국제협력, 타종교와의 대화, 도시문제 등 10개 주제가 다루어졌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세계YMCA총회는,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세계문제의 중요 이슈인 환경과 개발, 중동 평화, 인종차별 철폐운동, 남태평양의 비핵화 등에 관련해 총11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855년 최초로 파리 세계YMCA대회가 열린 이래 최대의 참가인원을 기록한 서울대회를 통해 나타난 특징은, 탈냉전시대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에 최초로 열린 세계대회였다는 것과 그 어느 때보다도 청년. 여성들의 참여와 발언권이 높았던 대회였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세계YMCA를 주도해온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제 3세계의 경험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탈 서구화 현상이 강하게 투영된 대회였다.


8. YMCA 목적문의 현대적 표현


세계YMCA연맹은 1991년 서울세계대회에서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YMCA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파리기준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하였다. 세계YMCA연맹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94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는 위원회 활동의 중간보고가 있었다. 이후 세계YMCA연맹은 전세계 YMCA에  1998년 세계대회를 앞두고 YMCA목적문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자  초안을 다음과 같이 마련하였다..


선교 선언문 (초안)


기독교청년회(YMCA)는 청년들의 국제적 평신도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적 정체성과 책임은 우리에게 이 세상 속에서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을 섬기도록 요구하는 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모두를 위하여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기독교청년회는 예언자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정의 사회의 비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개적이고 창조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1) 우리의 상황


이 선교적 선언은 오늘 우리의 세계 상황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그리고 그 안에 사회적 계급들간의 갈등이 있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있으며, 종교적 문화적 극단주의로 인해 종종 폭력적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상황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곧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한다.


YMCA는

 1.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곳,

 2. 청년들과 어린이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곳,

 3. 극심한 가난으로 삶 자체가 위협받는 곳.

 4. 과학기술의 오용과 남용으로 민족과 국가가 무력화되고 삶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곳,

 5. 물질주의로 인해 영적 궁핍과 고립과 폭력이 생겨나는 곳에서


생명의 충만함을 주시는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한다.


YMCA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는 세계 속에서,

  모든 지역에서 종교 다원주의가 현실로 인정하는 세계 속에서,


YMCA는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기 위하여 다양한 은사를 주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한다.


2) YMCA 규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선교적 사명으로 YMCA의 일상적 삶과 사업에서 아래와 같은 일에 주력한다.


하느님의 통치에 대한 비전에 의해 영감을 받아, 일치 안에서 행동하면서 YMCA는 :


1. 개인의 영적, 지적, 신체적 행복과 공동체의 온전함을 위하여 노력한다.

2. 청년들로 하여금 평등한 사회를 위한 변혁을 위하여 책임적 삶을 살고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 준다.

3.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억압, 착취, 차별에 저항한다.

4. 모든 형태의 학대와 착취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지킨다.

5. 가난하고 빼앗기고, 뿌리뽑힌 민중과 압제받는 소수 민족들과 연대하여 활동한다.

6. 민중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시켜 주며 문화적 갱신을 촉진한다.

7. 신앙이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한다.

8. 갈등의 상황에서 중재자와 화해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9. 나라와 민족간의 평등한 관계를 위하여 일한다.

10. 하느님의 창조들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그것을 지키며, 후손들을 위하여 지구의 자원을 보전한다.


9. YMCA 사명에 관한 아시아YMCA 선교 선언문


아시아YMCA는 1997년 1월 27일 부터 30일까지 일본YMCA의 도잔소에 모여 1998년 세계대회를 앞두고 제시된 세계YMCA의 선교선언문 초안을 검토하고 아시아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선교 선언문 (제안)


파리기준이 YMCA운동의 기준이다. 우리 지역의 정황속에서 우리는 파리기준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1. YMCA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국제적이며 자발적이며,에큐메니칼한 기독교 운동체이다. 

2. YMCA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정의와 평화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에 대한 그 복음과 비젼을 개방적이고 능동적으로 모든사람, 특별히 젊은이들과 나누어 갖도록 부름을 받았다.

3. YMCA는 능동적으로 모두를 위한 삶의 품만함과 창조물의 온전성을 위해 공동체안에서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YMCA의 책무


그렇기 때문에 우리지역 YMCA는 하느님의 통치에 관한 성서적 비젼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사명을 오늘날 이 세계안에서와 세계를 위해서 추구하며 다음과 같이 노력한다.


 1. 전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고 잇는 개개인들과 공동체들의        정신적, 지적, 신체적 안녕을 위해 일한다.

 2. 공평한 사회에로의 변형을 위해 젊은이들로 하여금 보다 더한 책임감과 지도력을 갖도록 해준다.

 3. 여자에 대한 모든 형태의 억압, 착취, 그리고 차별에 항거한다.

 4. 모든 형태의 남용과 착취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한다.

 5. 가난한 사람들, 추방당한 사람들, 철거민들, 억압받는 소수종족과 민족들,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일한다.

 6.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문화쇄신을 촉진한다.

 7. 다른종파의 사람들과 대화와 협력을 촉진한다.

 8. 갈등상황속에서의 화해자의 길을 모색한다.

 9. 국가와 민족들간의 공평한 관계를 위해 일한다.

10. 하느님의 창조물에 대한 보호와 그것에 대한 파괴행위를 방지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의 자원을 보존한다.

11. 시민사회의 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2.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자와 젊은이의 동등한 참여기회를 보증한다.


실천에의 부름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YMCA는 위의 책무들을 보증하기 위해서 그 책무들에 충실해야 하며 YMCA간의 협력과 상호제휴를 모색해야 한다.


150여년의 세계YMCA의 역사 속에서 에규메니칼 운동의 고전 원칙이 되고 있으며  YMCA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파리기준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재해석을 요구받고 있다.  이같은 요구속에서 1998년 세계YMCA대회를 앞두고 오늘의 시대에 YMCA가 견지해야할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의 진행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이상에 기술한 세계YMCA의 선교 선언문과 아시아 YMCA의 선교선언문은 큰 틀안에서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강조점과 우선순위에 있어서의 차이이다. 아울러 선교적 사명속에서 일상적 삶과 사업에서 YMCA가 주력할 규범으로 아시아 YMCA는 시민사회 건설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것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자와 젊은이들의 동등한 참여기회를 보장하는일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그 책무에 충실함과 YMCA간에 협력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하는 실천에의 부름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세계사는 서구 주도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성장과 아시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제 아시아의 역할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YMCA도 아시아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YMCA 소개.hwp

센터 출판물 "YMCA운동 이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