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MCA 목적문, Challenge 21를 회고하며1)
일본에서 인도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기독교 대학들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일을 맡아서 홍콩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옛날 이야기 밖에 없다. 회고담 비슷하게 편안하게 들어달라.
■ 한국YMCA 목적문에 대한 회고
나의 기억으로는 강 문규 신임 총무가 취임하면서 조직한 목적과 사업위원회의 제1차 사업으로서 한국 Y의 이념 정립과 함께 목적문의 기초 작업을 개시하였다. 1974년 춘천에서 열린 모임에서 이념 정립의 역사적 신학적 기초 작업을 거쳐 목적문 작성과 검토에 들어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기초위원으로는 대부분 한국의 저명한 신학자들과 Y 운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생존하는 분들로는 현 영학 교수, 유 동식 교수 등을 들 수 있고, 작고하신 분들로는 서 남동 교수, 김 천배 선생 등이 기억 난다. (나는 당시 43세의 초심교수로 참여한 영광을 가졌었다.)
그 때 열기가 대단했다. 74년 하면 유신 초기이고 박정희 대통령이 위세가 당당해서 비상조치를 선포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펴나가는 유신정권이 시퍼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모임을 춘천에서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강총무님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이런 모임을 가지나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질 정도로 제 마음을 벌벌 떨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모임에서 YMCA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나, Y가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일을 해왔고 우리의 미션이 무엇이냐? 그 당시에 생소한 한국의 Y에도 미션 statment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 미션, 목적이 무엇이냐 이념추구를 위한 모임이 있었는데, 동기는 이념이 필요하다. 없어서가 아니라 이념을 재정립하고 한국Y의 역사적 상황안에서 재조명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념추구의 모임에서 제일 많이 논의된 것이 한국Y의 역사적 조명이었다. 한국Y가 초창기부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할 뿐만 아니라 반응을 했고 책임의식을 느끼고 일을 해왔는가 하는 역사의식의 계발이 제일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많은 분들이 목적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Y 파리기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Y 나름의 목적문이 뭔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다. 파리기준은 1855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서구세계가 식민지 팽창에 눈이 어두어 가고 있는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파리기준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Y운동을 해왔다면 한국의 상황에서 파리기준을 어떻게 해석하고 우리 나름대로 어떤 목적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모임이 있었다.
우리가 한 마디로 이야기 한다면 세계Y 운동의 상황화, contextualization이라고 할까, 한국이라고 하는 역사, 문화속에서 어떻게 토착화되어왔는냐를 성찰하면서 토착화된 Y 의 목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문화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의 상황화 이것이 당시에 있어서 30년전에 저희들이 생각한 동기였다.
■ 목적문 작성의 동기 :
당시 참가자들은 상당한 열기를 가지고 모였는데, 사회적으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강권통치가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무슨 동기와 목적으로 이런 모임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YMCA가 오랫동안 일을 했는데 무슨 mission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이 동기는 YMCA의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한국 YMCA의 역사의식 개발, 어떤 일을 해왔는가? 왜 그런 일을 했는가?
⊳ 세계 YMCA의 파리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반세기 전에 파리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서구사회가 식민지 팽창에 몰두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이다.
⊳ 이런 기준을 받아들여 한국YMCA운동을 했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한국적 표현을 고민하게 되었다.
⊳ YMCA 운동의 상황화 혹은 토착화 과정을 성찰하면서 토착화된 한국YMCA의 목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 목적문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있다.
첫째는 주어가 있다. Y의 목적문에는 주어가 뚜렷하게 나와 있다. 중요한 요소이다. 주어는 누구의 것이냐 오너쉽의 문제이고, 그 다음에 주체의 정의가 꼭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주체가 그런것이라면 무엇을 하는가나 나오고, 무엇을 향해서 어떻게 하느냐가 들어간다.
우리가 그 때 mission statemnet를 목적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대단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Y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목적문>이라고 한 것은 분명하게 어떤 사명을 논의할 때 목적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적문이라고 했는데, 30년후에 읽어보아도 목적문이라고 한 것은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자화자찬이 많을 것 같습니다.
⊳ mission statement는 공통적인 필수조건으로 주어, 주체, 주인, 소유자, 행동하는 자 (누가, 무엇이)가 있다.
⊳ 한국YMCA 목적문에는 주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주체가 누구이다라는 정의가 드러난다. 주체의 정의
⊳ 무엇을 하는가? 동사, 행동 내용, (무엇을, 무슨 일을)
⊳ 무엇을 지향하는가? 목표 설정 (무엇을 향하여)
⊳ 대부분은 사명선언으로 가는데 목적문으로 명시한 것은 분명한 지향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 행동 방식, 방법론 (어떻게)
■ 목적문의 분석
• 파리 기준과의 공통점
주체는 : 젊은이들
⊳ 기독교 청년회는 : 이 단어를 가지고 한 시간인가 싸웠다. 논쟁을 벌였다. 한국YMCA이라고 하지 않고 왜 기독교청년회는 그랬느냐, 그리고 한국기독교청년회 라고 하지 않고 기독교청년회라고 했는가? 이것 가지고 논쟁을 했다. 지금보니까 잘한 것 같다. YMCA는 외래문화를 왜곡 전파한 괴수들이라고 비판을 받는 마당에 또 YMCA라고 하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기초위원들 가운데 지배적이었다. 한국을 붙이지 않은 것은 한국말이니까 한국기독교청년회이지 거기에 한국을 또 붙이면 한국 한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을 빼고 기독교청년회 그렇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 통일지상주의자들이 몇 있었습니다.(웃음) 통일이 되면 한국이라고 할지 조선이라고 할지 모르는데 왜 한국이라고 해서 미리 남한만 생각을 하느냐 그런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은 없는데, 그래서 기독교청년회이라고 한 것은 통일 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잘한거다 (웃음)
또 주어가 하나 있다.
⊳ 젊은이들이. 이것은 요새 표현으로 기통찬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세계YMCA에서 한 목적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젊은이들 때문에 목적문 만들때 고생을 많이 했다. 둘러보면서 여기 젊은이들이 몇 사람있냐? YMCA가 아니라 OMCA가 되가는 판인데 이것을 어떻게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다,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젊은이 늙은이 하니까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4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웃음) 생각하기를 여기에 늙은이 이야기를 쓰면 안된다. 반드시 기독교청년회의 주체는 젊은이들이다. 그런 뜻에서 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강조점을 두었다. 맘이 젊든지 몸이 젊든지 간에 YMCA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천명하는데 시간을 참 많이 보냈다.
그리고 목적으로 들어가면
⊳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깐 궁극적인 목적이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것에다 두고, 그 다음에 하나님 나라 건설의 내용과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사이에다 두었다. 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도 된다. 그 안에 다 포함이 되는데 그것을 구태여 구체적으로 말해 본다면 “기독교 청년회는 이러한 내용과 방법으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려고 한다.” 이렇게 써 본 것이 다음의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함께 배우고.. YMCA는 배우는 학습하는 공부하는 모임이다. 그리고 훈련하고. 또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의식을 계발하고,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일하며, 민중의 복지 향상과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 함으로써.” 방법론이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다 잊어버려도 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그렇게만 해도 한국Y의 목적문은 충분하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시대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그 내용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 때 역사적 상황이었다.
목적문의 상황성을 말씀드리면,
⊳ 역사적인 책임의식을 계발한다 :
책임의식이라는 것은 1974년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사실 우리는 정치적 책임성이란 말을 쓰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역사적 책임의식이라는 말을 썼어도 그 때 많은 이사님들이 이거 박정희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이것을 넣으면 Y가 어떻게 되느냐 Y를 하겠다는 것이냐 안하겠다 얘기냐 할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 그 때 위원장 자체가 역사의식이라는 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반대를 하시다 하시다 못하시고 기초위원들한테 밀려서 통과되었습니다만, 역사적 책임의식이라는 것이 그 때 그 상황에서는 아주 처절한 문구였다. 우리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 처해 있느냐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배우고 인식하고 거기에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Y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 그 다음에 사랑과 정의의 실현이다.
처음에는 ‘사랑을 실현한다’였다. 사랑을 하는 Y가 되어야 된다라는 상당한 낭만적인 내용이 제안되었다. Y가 사랑만 하다보면 정의는 어떻게 되느냐. Y가 사랑도 못하고 정의도 못하고 그렇게 될 것이 아닌가? 역시 그렇게 논쟁을 하다가 이 때는 제가 굉장히 노력해서 정의란 말을 집어 넣었다. 그래서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을 넣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싸우기를 참 잘했다고 하는 생각을 지금 하고 있다. (웃음)
⊳ 그 다음, 민중의 복지 향상 :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경제적인 목표설정을 위해서 이 말을 넣었습니다만, 이 때 민중이란 말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대단하였다. 서남동 교수님도 그 때 계셨고, 저는 그 때 민중이란 말이 뭔지도 모르고 듣기 좋아서, 전태일 사건이 있은 이후였기 때문에 민중이란 말이 신학계에서 많이 논의되던 때였기 때문에 저희들로서는 민중이란 말을 쓴다는 말이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그 당시 Y의 분위기와 정치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이 말이 들어갔다는 것은 Y 100년 역사에 있어서 스스로 축하할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복지라는 말을 잘 쓸줄도 몰랐고 복지란 말은 공산당이나 쓰는 거라고 중앙정보국 가 정의를 해놓았을 정도였다. 그 말을 우리가 썼다. 민중의 복지 향상을 위해서. 그것을 읽을 때 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굉장히 용감한 예언자적인 생각을 가지고 채택한 것이 아닌가. 쓸 때하고 채택할 때하고 확실히 다른데 이것을 그 당시에 Y의 지도자들이 채택했다는 것은 저희들이 기억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역사적 책임의식, 민중의 복지라는 말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되풀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그 뿐만 아니라 Y가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응하는 말만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우리 Y는 문화운동단체인데 여기 문화라는 말이 없다고 유동식 교수님이 굉장히 주장해서 문화라는 말을 넣었다.
그 당시에는 박정희씨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충효사상을 강조하면서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때 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통키타를 가지고 청년문화를 한다고 하면서 “통키타와 생맥주”로 요약되는 청년문화를 강조하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한국의 Y가 문화운동체로서 어떤 문화를 이야기 할 것인가? 전통문화도 아니고 그 때 저희들이 생각하기에는 젊은이들의 날라리 서구문화도 아닌 새로운 문화창조에 기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새문화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한국Y의 목적문이 세계Y의 파리기준 하고는 어떻게 공통점이 있는가?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은데 근간은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어”, “ 그 신앙과 생활에서 그의 제자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하나로 뭉치고 그 힘을 합하여 청년들 가운데 그 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서 ”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에 있어서는 파리기준하고 목적하고 상치되는 것이 없다고 본다. 한가지 다른 것은 파리기준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을 때 무엇을 의미했을까? 1855년 역사적 상황을 생각하면 제국주의의 식민지 팽창의 시대에 있어서 서구 문명의 확장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당시 파리에 모인 청년들이 주로 북미주에서 온 사람들, 북구라파의 청년들, 평균연령이 30세 미만이고, 이것을 기초한 사람은 26살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파리기준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정치적인 문화적인 감각에서 다른 것이 아닌가? 같은 말을 써도 70년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자고 할 때 그 내용은 한국사회의 인권과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참여민주주의를 머리에 두고서, 군사독재가 아닌 그런 민중의 나라를 머리에 두고서 하느님 나라를 쓴 것이었다.
기초위원들 가운데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파리기준에서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확장하고 한국Y의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것은 역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 그런데 YMCA에서 많은 사람들이 C가 무엇이냐? Confucunism이냐 Communism이냐 도대체 뭐냐?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성서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때 논의를 했다. 그 기준은 오늘 개회기도회에서 봉독한 예수의 선교목적문이라고 할 수 있는 누가복음 4:18절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맨 처음 하신 것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다. 하나님 나라의 구현의 내용, 방법론이 예수님의 선교선언문에 있는 것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이것은 바로 예수의 선교선언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저희들이 신학적인 해석을 했다.
젊은이들이 : 또 하나의 주어이다. 새로운 발상이었다.
주체의 정의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서 그리스도를 학습하고 훈련함으로서,
목표 설정은: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목적으로
기독교 청년회는 (주체가 ) 목적으로 한다. 에 기본 골격이 담겨있었다.
다만 이런 틀위에서 다음의 상황을 담았다.
• 한국 목적문의 상황성 : 행동내용과 방법론
⊳ 역사적 책임의식 :
역사적인 책임의식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볼 때 정치적인 책임의식을 담고싶었다. 그럼에도 역사적 책임의식이란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의식이 많았다. 당시 상황에서는 많은 함의를 담고 있었으며 그 의미도 컸다.
한국 YMCA의 역사적 발자취 (항일 독립운동, 계몽 개발사업, 전후 복구 운동)와 1974년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성”의 강조의 필요성을 반영하였다.
⊳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설정했다.
처음에는 사랑을 실현한다로 맞춰졌다. 사랑만 한다면 정의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 "민중의 복지 향상" : 당시 민중이라는 언어는 정치적인 분위기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복지도 사회주의적으로 폄하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뚫고 민중의 복지향상이라는 언어가 채택되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내용으로서의 경제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자 유신정권의 고도 경제 발전의 와중에서 빈부의 격차와 민중의 경제적 불이익을 염두에 둔 내용
⊳ “새 문화 창조" :
정치, 경제적 의미만 다룰 것이 아니다. 문화단체로서의 자기위상이 있다는 주장을 유동식 교수가 강하게 했다. 즉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내용으로서의 문화적 목표 설정. 이 당시의 문화적 상황으로서 유신 정권이 전통문화를 강조함으로써 "복고적" 정치문화를 강요하던 배경과, "청년 문화"인 통기타 , 맥주문화가 대두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문화 운동 단체"로서의 YMCA가 추구하는 문화적 자기 정립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명을 반영하였다.
⊳ 파리기준과의 공통점 :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것, 청년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 다만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는 인권과 정의가 넘치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현, 독재가 아닌 민중의 나라를 지향한다는 우리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파리기준의 하느님 나라 확장이 갖는 제1세계의 서구문화의 의미와 구분되었다.
⊳ 기독성(Christianity)은 아래의 성서적 맥락에 기초하고 있었다.
• 성서적 맥락 : 예수의 Mission Statement, 예수의 선교 목적문: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도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심이라.
주께서 나를 보내심은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눈 뜨임을 선포하며
눌린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
•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한국 목적문)의 신앙적 의미와 신학적 토대
예수님의 목적문이 추구하는 방향에 한국YMCA의 목적이 일치하고 있다고 결론
■ Challenge 21에 대한 회고
내 기억으로는 1991년 세계 YMCA 서울대회에서 제3세계 대표들의 제청으로 파리기준의 재검토와 세계YMCA 운동의 이념 정립을 위한 작업을 착수하여 "선교 위원회"를 구성, 그 위원회 위원장으로 작업에 착수하였다. 한국에서의 작업의 경험을 살려 각국 YMCA의 목적문과 "Mission Statement"를 수집하고 목적문 작성 작업을 종용한 바 있다. 위원회와 각국 여론은 양분한 상태였다. 한편에서는 파리 기준은 영원 불변한 Y의 목적문이며, 캄파라 대회 형식의 재확인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파리 기준은 오늘의 상황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다시 제시(상황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협상 끝에 목적문도 아니고 새로운 기준도 아닌 Challenge 21 즉 21세기를 맞이하는 세계 YMCA가 당면하는 도전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1998년 내가 세계YMCA 회장직을 끝 막음 하면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세 번째 천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1855년에 채택된 파리 기준이 YMCA 사명의 근간임을 확인하면서(토대확인),
YMCA가 청년들의 진정한 참여를 강조하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아우르는 기독교 운동이며,
에큐메니칼 정신에 기초한
자발적인 운동임을 선언한다(YMCA 운동정의)
(world-wide, Christian, ecumenical, voluntary movement).
이런 말을 넣는 상황이 참 어색했다. 노인, YWCA를 염두에 두고 청년들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했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정말 말하고자 했던 것은 world-wide, Christian, ecumenical, voluntary movement이었다. institution이 아니라 운동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YMCA는 모든 피조물이 충만한 삶 (fullness of life)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의에 기초한,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해의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기독교적 이상을 나누기 위해 애쓸 것이다.
("it seeks to share the Christian ideal of building a human community of justice with love, peace and reconciliation for the fullness of life for all creation.")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니까 목적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행동강령이 되지 못하고 어중간한 타협적 언어로 정리되었다. 공유하려고 노력한다지 행동강령이 없다. 위원장이 이것 가지고 2년동안 싸웠는데 결국 지고 말았다. share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고, 하느님의 나라보다는 파기기준에 있으니까 인간 공동체가 충분하지 않느냐 그래서 이정도가 되었다. 아까는 잘했다는 말을 열심히 했는데 잘했다는 말을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전세계의 Y의 공통된 목적문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것가지고는 부족하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 처음에는 10가지가 나왔다. 10계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7가지로 추려서 통과가 되었는데 요약한다면
독일Y에서 제일 많이 강조한 것인데 Y는 복음운동체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맨 처음에 넣었다.
애매한 문장으로는 도전의 정신을 표현하기가 부족하여 아래의 7개항에 걸친 도전의 내용들을 열거하였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2. 여성과 청년들의 지도력 참여
3. 여성과 아동의 권익 향상
4. 종교간의 대화 촉진
5.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과의 연대
6. 사회 국제적 분쟁에의 화해자로서의 개입
7. 하느님의 창조 보전의 책임
오늘의 21세기에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각 나라에서 수집해서 추려서 만든 것이다.
Challenge 21의 특징을 말씀드리자면,
- 역사적 지속성: 1855년에 채택된 파리 기준에 대한 재 확인함으로써 역사적 지속성을 가졌고
- 21세기의 상황성 반영
- YMCA 운동의 주역이 청년들이라는 것과 남자와 여자들이 함께 해나가는 운동체다. 참여
- YMCA의 정의: World wide
Christian
Ecumenical
Voluntary
Movement(not institute but movement) 기구나 체제가 아니라 운동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 YMCA 운동의 목적:
모든 피조물이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인간 공동체 형성
인간 공동체의 내용은 정의와 사랑, 평화와 화해가 넘치는 것을 말한다.
■ Challenge 21의 분석과 반성 :
반성이 더 많다. 이것을 만들어 놓고서 기회있을 때마다 읽어보면 역시 약한 세계Y의 목적문이 된 것이 아니가, 어딘가 맥이 빠진 그런 느낌을 느꼈다. 역시 전 세계적인 statement라는 것은 힘이 없는 것이 되지 않았나. 그래서 Y의 목적문하고 도전 21을 이런식으로 비교해 보면 역시 구체성이 있는 역사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우리의 문제속에서 나온 목적문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저는 도전21을 발표된 이후에 누구한테도 참 잘했다라는 말을 못들었다. 잘했다는 말보다는 수고했다. 여러분들 목사가 설교하고 난 다음에 인사하면서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럴 때 맥이 빠진다(웃음). 할 수 없어서 하는 인사다. 도전21은 수고는 많이 했고 돈도 많이 썼는데 역시 수고한 것 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도전21에서 열거한 문제들이 Y가 당면한 일감들이 아닌가 하는 것에는 동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파리기준에서 이야기했는데 도전21에서 이야기를 못한 것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이것이 세계Y의 현황이 아닌가? 많은 종교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독론중심의 그리스도중심의 YMCA가 약화되면서 제1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그야말로 자기당착적인 글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말이 맥빠진 결론이 되어서 죄송하다. 이것이 이런 일을 해 온 사람의 하나의 회고담으로 옛날 이야기로 받아주시면 고맙겠다.
- 파리 기준의 재확인
- YMCA 운동의 주체의 재확인
- YMCA운동의 정의 설정
- 운동의 목적 제시
- 7개 분야의 도전 제시
- "하느님 나라" 표현의 약화
- 행동 강령의 약화 (기독교적 이상을 "나눈다"?)
- 구체성,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공유위에서, 공통의 문제의식에 기초한 목적문이 힘이 강하다. 도전 21이 열거한 일감들이 오늘날 YMCA의 운동과제이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기독론 중심의 YMCA운동에 대한 의미가 약화되었다.
■ 논찬 : 강문규(전 연맹 사무총장) 목적과 사업 연구위원회가 왜 모였고,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해 덧붙이고 싶다. 상당히 미화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사실적으로 한 것을 글로 적었다. 그것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목적과사업 연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Y의 특징이 다른 단체와 정반대 특징이 있다. 다른 민간단체들은 총론을 잘한다. 각론에 가면 없다. Y는 각론이 지나치게 발달된 단체이다. 100년을 가고 나서 회고해 보니까 총론적인 종합이 안되었다. 파리기준 가지고는 구름잡는 이야기다. 그래서 미화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1991년이 두 번째 시도이다. 그 전에 파리기초선언을 다시 쓰자 실패했다. 저는 이것을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 오늘 생각났다.(웃음) 도전 21 다 부산물이다. 여기에서 힘이 나올 수 없다. 그것이 저는 Y가 프로그램에서 확장해 버리고 신학적으로 종합할 능력과 사회적으로 종합해서 해 낼 능력을 둘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각 국에서 목적문을 만들어라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잘되었다고 한국Y가 한 셈이다.
서박사님의 말에 보완을 한다면 아까 토착화라는 말을 썼는데, 토착화보다도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명에 더 포인트가 가있다. 그러니까 파리기준의 틀 안에서 쓰여있지만 그 안에는 행동강령이 들어있다 역사의식, 사랑과 정의, 새문화 창조, 이 말을 당국이 다 싫어했다. 그래서 행동강령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솔직하게 목적문을 다시 쓴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30년마다 한번씩 주기적으로 쓰는 것이 목적문인가 그런 생각을 첫째 했다. 그 다음에 못쓸 것은 없다고 본다. 상황은 많이 바뀌었는데, 상황만 바뀌었다고 목적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신학적인 사회적인 자기이해에 대한 전환이 무엇이냐 그것이 없이는 바뀐 상황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1) 서광선, 전 세계YMCA연맹 회장, 전 이화여대교수, 2007년 간사학교. 내용이 일부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실은 것은 목적문 작성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 그리고 목적문 작성에 참여했던 분들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생생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이 자료는 한국YMCA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3년 12월 2일~3일, 양일간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개최되었던 ‘목적과 사업 연구회’에서 서광선교수님이 주제 발표하셨던 녹취록입니다.
한국YMCA 목적문(서광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