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통탄’ 강희남 목사 목숨 끊어
[한겨레] 2009년 06월 07일(일) 오후 08:50

[한겨레] “살인자 이명박…민중이 나라 바로잡아야” 유서

한평생 통일·민주화 운동…장례식 ‘사회장’으로

통일·민주화 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흰돌 강희남 목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89. 1998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쪽본부 의장을 지낸 강 목사는 “4·19와 6월 민중항쟁처럼 민중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강 목사는 지난 6일 오후 7시45분께 전북 전주시 삼천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목사의 부인은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남편이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로 있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자신의 방에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라고 쓴 붓글씨 1장과 ‘남기는 글’이란 유서 1장을 남겼다. 유서에는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이명박을 내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인은 지난 5월1일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와 남북관계 경색을 안타까워하며 단식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9일 만에 접었으며, 지난 5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시국행사에 마지막으로 참석했다.

강 목사는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50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0년대 유신 반대 투쟁 등으로 세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0년대 한국기독교농민회 이사장을 지낸 그는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범민련 남쪽본부 대표단을 이끌고 조문하려다 구속되기도 했다. 2003년엔 이라크 파병 저지를 위한 목포~서울 천리 도보행진과 청와대 앞 단식을 벌였다.

고인은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 선거 때 40여년 만에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다시 투표했다. 그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군부 정권 밑에서는 국민 노릇을 할 수 없다며 1962년 주민등록증을 찢고 모든 선거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새번역 환단고기> <우리민족 정리된 상고사> <민중주의> <중국 동북3성을 가다> 등이 있다.

장례식은 통일·민주 사회장으로 5일 동안 치러지고, 10일 오전 8시 전주 전북대병원에서 발인한 뒤 오후 1시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영결식을 치른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전주시 효자동 기독교 납골당에 안치됐다가 통일을 열망한 고인의 뜻에 따라 북녘 땅에 모실 예정이다. 고인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으며, 차남 강익현씨가 전북도 의원을 지냈다.

방용승 전북겨레하나 공동대표는 “(고인이) 민주주의 후퇴와 남북관계 경색을 통탄하며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063)250-2450.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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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뵙니다.
참으로 어찌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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