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OP생활협동조합연구소 제9회 포럼, ‘광우병, 촛불 정국에서 생활 운동체인 iCOOP생협의 활동과 이후 과제’, 08.9.30.(오후 2시 - 5시), 서울대방동 여성플라자 NGO센터,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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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운동과 협동조합운동 그리고 촛불, 직접평화행동1)


이  윤  희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


1. YMCA 생명평화운동 이해


다양한 이해가 있지만 추상적으로 정의한다면, ‘근대물질문명의 기초인 생산력 지상주의에 매몰된 경쟁과 물질의 시대에서 ‘살아 있음(성찰적 개인의 주체성)’과 ‘이웃의 평화(우주 만물의 하나됨)’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찾는 운동으로 반물질, 반자본 운동’으로 규정한다.2)

지구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과제들, 이를 테면 절대적 빈곤과 물질적 부의 양극화,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부정의, 생태계 파괴와 자원고갈, 식량 위기와 지구 온난화, 종교 문화간 갈등의 심화, 경제적 세계화(Global Economic Regime), 젠더(Gender) 문제를 포괄하는 광의의 '평화' 문제를 21세기 혹은 새로운 밀레니엄의 핵심적 화두로 이해한다.

따라서 생명평화운동은 ‘반자본, 반물질’의 관점에서 ‘생산력 지상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과 제국(주의)’, 이들의 경제적 기반인 ‘에너지와 금융독점 체제’, 이를 지탱하는 ‘힘의 논리(정치안보주의, 군사주의) 그리고 지구화 이데올로기(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와 삶의 질을 보장한다,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명 전환 운동이다. 결국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개발주의 혹은 발전주의, 생산력 중심주의)을 받아들이고 그 기초 위에서 여기 저기 땜질하고 꿰메는 차원이 아니라, 패러다임 자체의 변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생명평화운동은 따라서 패러다임적 성찰과 그 차원에서의 문제제기이다. 

새로운 문명 전환 운동으로서 ‘생명평화운동'은 ‘대량소비와 끊임없는 죽임의 경쟁’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와 인간 공동체의 건강’을 척도로 ‘사회적 공정, 존재의 풍요로움을 지탱 가능케 하는 사회적 협동’을 높여가고자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비시장적 질서, 즉 주축경제’를 확대해가는 운동이다.

인간을 비롯한 전 생명체가 빠진 총체적인 위기에 대한 총체적인 반응으로 나온 가치이자, 삶의 양식이며, 전 사회적 지향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멈출 수 없는 욕망의 경제에서 평화와 나눔의 경제'로 전환하고, ‘성찰적 개인 주권의 삶을 주창하고 개인 주권의 세계로 연대’하고자 한다. 이것은 곧 비폭력이나 관용, 상호 이해와 연대의 정신을 함양하는 것, 그리고 갈등과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평화문화'를 형성하고 확산해가는 운동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국 사회 안에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어려움과 제도와 정책의 문제로만 해소될 수 없는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문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또한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해가는 방식, 즉 한 사회와 집단이 갖고 있는 가치, 정신, 태도 등이 중요시된다. 생명평화운동은 ‘내가 없는 타자에 대한 규정’, ‘타자가 없는 나만의 수련’ 그리고 ‘공동체 중심의 생활’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추구는 ‘집단과 개인에 드려지고 있는 위기와 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가?’라는 문화적 맥락과 텍스트에서 근대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비판적 담론을 요청하는 것이다.


2. YMCA 생명평화운동과 협동조합운동


YMCA 생명평화운동은 마을단위 소모임 중심의 자치적 삶에 비시장적 질서를 구축, 확장하기 위한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국(주의) 질서의 파괴적인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한 마을로부터 자치와 연대의 사회적 협력 능력을 구축,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실존과 관련된 문제 전반에 대해 각자의 견해와 열망을 체계적으로 타진하며 또한 서로 다른 요구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절충할 수 있는 해법을 체계적으로 찾아 나가는 지구시민으로서 지구민주주의를 확장, 도모하는 운동으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또는 자활사업, 공정무역,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역화폐운동 등 비시장 내지 半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비시장적 경제 질서는 규모의 맹목적인 확장과 무한정의 이윤 추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성을 견지하면서 지역 내부 순환 경제를 도모하는 가운데 삶의 동력을 경제적인 부가가치의 원천이자 또한 생산의 과정 및 결과로 삼는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풀려나 존재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타인들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보람이 거기에 있다. 덜 일하고 덜 벌고 덜 먹고 덜 쓰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결핍 또는 여백을 소통과 상부상조, 그리고 문화의 창조로 메워가는 것이다3).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YMCA의 이와 같은 관심은 일제 강점기 농촌협동조합운동으로부터 시작된 YMCA운동 전통과 70, 80년대의 양곡은행, 신협운동 등 농촌개발사업과 지역 사회개발단운동, 농협개혁운동, 노조지도자교육, 90년대의 등대생협운동이나 마을만들기운동의 전통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과 실업사회'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및 빈곤화, 노동으로부터의 차별과 배제, 소외라는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존과 자립, 자치운동의 물적, 인적, 사회자본의 기반으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보단 근본적인 인식은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에 입각한 국가 기능의 연성화 또는 축소라는 흐름의 지배에서 미국발 금융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국가의 귀환'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국가 권력이 노동관계, 소비자의 멘탈리티, 젠더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생산력을 통한 진보가 또 다른 진보를 낳는다는 관념은 정당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있다. 과연 정부가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가 활성화되면 이 모든 사회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을까? 누구도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와 관료주의가 중심인 행정, 많은 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이윤추구가 목표인 시장의 논리가 사람살이의 아픔을 달래며 사회관계를 회복하는데 적합한 조절양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국가와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결국 시민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자치와 참여, 연대를 토대로 시민사회가 시장과 국가부문의 한계와 폐해를 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에서 지구시민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중요한 경제적 토대일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생명평화운동의 지평을 넓혀 가는데 있어, 한국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확대해 가는데 있어 가장 깊고 넓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운동으로 그 중요성이 크다 생각한다. 그러나 자칫 시민사회의 이와 같은 실험이 협동조합운동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이유로 법, 제도화라는 쉬운 길로 발걸음을 옮김으로써 애초 확산하고자 갖고 있던 이념과 지향, 가치를 상실한 채 제도와 틀, 껍데기만 남기는 愚를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3. 한국 시민사회운동과 협동조합운동


현 정부가 들어 선 이후 벌어지고 있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무법적 통치 행태는 한국사회가 그토록 자신하고 믿었던 민주주의와 인권 등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시민사회운동이 얼마나 부족하고 취약한 것인지를 절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 설정에 대한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 지도력의 정부 참여나 거버넌스를 통한 정부나 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협력에 대한 평가는 차분히 다뤄져야 하겠지만, 정책·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중심의 대변형 운동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한 것에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운동이 90년대 이후 중요한 운동으로 자리잡아 왔고, 정부 개혁과 정책개선운동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 참여형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한 한계다. 정책과 제도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시민없는 시민운동, 관전자나 평가자의 위치로 시민의 역할을 만들고 시민운동은 또 하나의 정치 게임집단으로 머문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중요한 가치 쟁점에 대한 의제설정과 담론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IMF 이후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 삶의 질서와 연대를 파괴하는 비정규직화의 문제, 파병(자원과 에너지, 평화 등), 생태적 가치 등의 문제에 있어 소극적이거나 스스로가 정책과 제도 중심의 슬로건으로, 이벤트 프로그램으로 갇힘으로써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가치, 담론의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 이것은 광우병 정국에서나 최근의 중국산 멜라민사태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공장형 축산산업의 문제나 육류 중심의 식탁, 공장형 과자, 원료 등 좀 더 가치론적인 토론과 학습을 위한 모임이 더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역사회의 부재다. 풀뿌리운동에 대한 논의가 2000년대 이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 지역운동에 투자되는 인력과 자원은 대단히 부족하고 협소하다. 서울과 지역에서, 중앙단체와 서울, 수도권 지역단체에서 그 차이는 명확하다. 전문가, 시민운동 지도력들조차 지역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분위기고, 웬만하면 강의나 토론회도 가지 않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 시대의 위기 상황은 사회체계 전체의 목표와 가치, 인식과 지식의 체계, 생산양식, 정치구조, 교육의 내용, 인성과 구조와 연결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단순한 정책과 제도적 차원의 개혁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정수복, 2002)는 지적은 여전히 타당한 분석이다.

지역에서 시민들이 소모임으로 참여하는 운동, 새로운 사회의 가치 담론을 갖고 나누며 공유하기에 힘쓰는 모임, 자발적인 운영과 네트워크, 정부 개혁뿐만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자조집단으로 삶의 질을 나누고 연대하는 삶의 공동체, 지구시민으로서 네트워크하는 소모임, 협동조합이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이자 비전인 이유일 것이다.


4. YMCA 생명평화운동과 촛불


90년대 이후 97년 IMF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시장과 자본이라는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자유경쟁이 규제된 시장경제, 경쟁이 존재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한 양육강식의 시장논리를 따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퇴출되는 사회다. '1등주의'가 공공연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다. 성공과 행복의 철학이 부재한 철학 부재의 사회다. 그 정점이 경제성장이라는 환상과 이데올로기로 그들이 그토록 신봉했던 자본주의에 위배되는 중대한 범죄 의혹과 온갖 불법, 탈법에도 불구하고 경제대통령을 선출했던 지난해의 대통령선거인 것 같다.

지난 대선 이후 대부분의 시민사회운동은 좌절의 아픔과 함께 비전 상실을 경험한다. 향후 몇 년 안에는 어찌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그래도 최소한 대운하만은 막아야한다(달리 말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운하 문제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는 고민으로 이를 중심으로 한 연대가 고작인 상황이 올해 4월까지의 풍경이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사회 각 부문 영역에서 고투할 수 있었던 역량은 실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YMCA는 지난 6월 28일부터 'YMCA 시민불복종 직접평화행동'의 이름으로 '눕자 행동단'을 조직, 참여했다. 당시 분위기는 촛불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와 활동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시민사회 지도력은 밤거리의 배회자로 머무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눕자행동단의 문제의식은 당시 정부와 보수적인 언론에 의해 폭력의 문제가 집중 제기됐고, 촛불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본격적인 봉쇄, 탄압국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과 청소년들의 정당성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YMCA가 규정하고 있는 'YMCA 촛불직접평화행동-눕자행동단 탄압 만행 사건'은 6월 29일 오전 12시 20분 경, 서울시 의회 골목에서 진압해오는 전경들 앞에 일반 시민들과 함께 누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눕자행동단'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사건이다. YMCA는 비폭력평화행동으로 아무 생각없이 누워 촛불시민들의 뜻을 세우고 지키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활동은 천주교, 불교, 기독교 등 종교 세력의 평화행동과 연결되면서 7월 5일, 또 한번의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만들 수 있었고, 이날 전국에서 1000여명의 YMCA 회원들이 참여한 채 경찰청 앞 항의규탄 집회, 평화행진시 인간 방패 평화단 활동, 태평로 전경버스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대동놀이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시청이 원천봉쇄된 후 광우병기독교대책위원회 목사님들과 함께 인권위 앞 기도회 등을 통해 평화집회 공간을 여는 노력도 꾸준히 지속했었다. YMCA 눕자행동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비폭력평화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고도의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활동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4)

지금까지 YMCA는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등과 전수조사업, 불매운동 등의 사업과 7월 11일부터 시작된 청와대 앞 1인평화행동을 지금까지 56회째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 앞 1인 평화행동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늠하는 최소한의 시금석으로 '어청수청장 파면과 평화집회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5. 촛불과 직접평화행동


4월말부터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과 네티즌들의 국회 앞 집회로 시작된 촛불은 시민사회 영역과 관련해 '비폭력평화행동의 사회화, 대의민주주의·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논쟁, 온라인과 뉴미디어의 새로운 이해와 운동기제로써의 현실화, 청소년과 주부의 현실 참여·정치화에 대한 가능성, 시민사회 각 영역의 수렴·통합 및 네트워크화, 기존 시민사회운동의 지도력 위기 및 운동방식과 내용의 변화·재편 촉진, 국제연대운동의 주체와 내용의 네트워크 중요성' 등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YMCA 생명평화운동(센터)은 직접평화행동을 주장한다. 에이프릴 카터에 따르면 직접행동은 "지배 엘리트 계층에 대해 자기 이익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또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별다른 정책 지렛대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직접행동은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동기에서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뜻한다".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와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그것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지구화 시대에 출현하고 있는 특징적인 정치 현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결손에 대한 반응이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적 자력화의 수단이자 목표이다. 따라서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제도정치에서 통용되는 표준어를 멀고 어렵게 느끼는 '작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활 정치 언어'다.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사회의 갈등 구조가 통상적 정치 채널로 소통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결손을 상쇄하려면 '민주주의의 급부(democratic benefit)'가 있어야 한다. 진 샤프는 이러한 급부를 발생시키려면 "정치에서 창조적 갈등"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라고 규정한다.", "어떤 제도나 기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로 할 때, 논의의 준거 틀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라면 직접행동은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 최후의,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직접행동만큼 개인의 자력화와 자존감을 즉각적으로 고무하는 방식도 잘 찾아보기 어렵다."5)

YMCA 생명평화운동은 정부기능에 의한 삶의 질서뿐만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가 민주적 질서와 경제를 갖고 지구적으로 네트워크하는 지구적 민주주의 가장 핵심적 행동이 직접평화행동이라 생각하며, 직접행동을 평화로 개념 정의하는 것은 직접행동은 폭력까지도 포함되는 개념임에 반해, 비폭력적 지향과 가치를 분명히하기 위한 개념 설정이다.

또한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구민주주의를 위한 직접평화행동의 물적, 사회적 기반은 협동조합, 공정무역,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회적기업(자활사업) 등 비시장적 경제질서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활동공간은 신자유주의 질서로 강제적인 편입을 통한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제국(주의)질서로부터 가장 약한 고리인 지역, 마을, 소모임단위라 생각하며 이의 다양한 형성과 확장, 네트워크를 직접평화행동의 시작이라고 인식한다.


6. 촛불과 뉴미디어


촛불의 파급력을 극대화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뉴미디어일 것이다. 실시간 중계와 토론 참여,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제기와 행동방식의 용인, 동시 다발적인 온, 오프라인 상의 활동은 이전 시기에는 상상에나 있던 것이다. 특히 이슈의 다양함과 다양한 행동방식에 대한 용인은 그 이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혁명적 변화이기까지 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풍요로운 물질적 삶을 향유하고, 학교와 가정에서 386 세대들에 의한 세례를 받은 청소년으로부터 찾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온라인의 자유로움과 감성적 코드, 공감의 능력을 들고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YMCA를 포함해 아직도 정보전달과 게시판 중심의 소통 수단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을 온라인운동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영역에서의 창조적 활동과 생산이라는 것보다는 오프라인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원활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온라인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08년 촛불은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것이 아닌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지금까지도 온라인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 대한 독립성과 창조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 찾기가 대단히 중요하다.(정부는 실명제, 명예훼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온라인에 대한 억압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은 온라인운동 집단만의 것인가?)

또 하나는 온라인 운동체로서 시민사회단체는 무겁고 폐쇄적이다. 온라인운동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로운 영혼과 이용자들의 감성과 공감 코드에 함께 호흡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계몽적이거나 스스로 갇혀 있는 자의식, 규제되는 조직문화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을 깨는 새로운 조직문화는 무엇일까?

아마 다음의 말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운동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우리는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 하루를 무심히 살아가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다.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진리를 직시하는 순간 또 누구나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가자.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7. 마지막 - 작은 모임이 아름답다


10만 회원, 몇 만 회원을 자랑하는 생협이 많다. YMCA도 100년의 역사와 회원수 수십만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YMCA라는, 생협이라는 도로를 통해 흐르고 나누는 정보, 가치는 무엇인가? 그 수단을 통해 나누어지고 가꿔지는 가치와 새로움은 무엇인가? 대단히 비관적인 때가 많다. 이것이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면, 최소한 07년 대선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허위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운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라는 질문에 궁색할 수밖에 없다. 촛불정국 이후 시민사회단체 후원이 줄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YMCA 생명평화운동(센터)는 생명평화라는 담론으로 가치와 주장을 담아 지역에서, 마을에서 소모임을 만들고 비시장적 질서를 넓히며 세계 지구시민들과 네트워크하는 운동을 꿈꾸고 있다. 규모를 파괴하고 작은 모임을 만드는 것.


-. 매스미디어의 광고 감시하기 : 공급에 의한 수요 창출(창출되는 욕망)

-. 시민전문가운동 : 작은 학습 소모임(광우병, 공장과자 등등)과 교육 프로그램 운영하기.

-. 지역 자원 순환형 마을운동



1) iCOOP생활협동조합연구소 제9회 포럼, ‘광우병, 촛불 정국에서 생활 운동체인 iCOOP생협의 활동과 이후 과제’, 08.9.30.(오후 2시 - 5시), 서울대방동 여성플라자 NGO센터, 토론문


2) YMCA 생명평화운동은 YMCA 언어로 표현하면, '생명이신 하나님의 지체로서 모든 만물이 생명의 소통을 이루고 거듭남으로써, 새하늘, 새땅, 새인간의 하나님나라운동이다. 인간의 무제한적인 탐욕과 오만한 지식이 파괴적이고 살생적인 세력과 체제를 구축하여 죽임과 파괴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놨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생명운동의 근본이요, 생명과 평화의 질서를 창조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희망이다. 예수는 우주의 생명이라는 신앙고백은 이런 인식과 운동의 기반"이다. 기독교 평신도 운동체로서 YMCA 생명평화운동의 의미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미 지구화 과정과 지구적 지정학적 과정에 깊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지구화 과정에서 상업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에 세례를 주었고 식민주의 팽창과 동반하였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에 깊이 개입하였다. 동시에 기독교는 근대과학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더구나 기독교는 제국 권력, 식민주의, 자본주의 권력과 공생하면서 세계종교로 확산되었고 오늘은 지구화와 제국의 세계지배에 정신적 중추를 하려고 하고 있다."(김용복, 2004,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협의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으로 한국YMCA 생명평화운동은 세계 기독교운동 진영에 중요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3) 김찬호, 생명과 평화의 사회문화적 조건,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 정책워크숍, 07.3.22.


4) 한겨레 21, '촛불은 평화다', 7월 7일자, 718호


5) 에이프릴 카터, 직접행동-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 출판사 교양인, 조효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