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 돌아보고 내다보며1)



■ 짧은 기간 우리는 너무 많이 파괴하며 살고 있다


지구의 탄생이 46억 년 전이고 우리나라 공주 석장리 유적으로 보면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것을 BC 70만년으로 추정한다. 그 가운데 인류의 고등 기술문명이 시작 되는 것은 산업 혁명을 통해서 인데 불과 200여년 을 조금 넘는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는 6,25 동란이후로 불과 50년의 세월로 그 짧은 기간에 지구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인류의 문명사는 대체적으로 자연을 성공적으로 지배하고 도구로 이용하고 수탈하는 역사와 맞먹는데 그러한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된 결과로  인류는 이제 명실 공히 지구 전체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예속시키고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제국주의자가 됐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생산능력이 인간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그 능력은 5배로 증가 했다고 한다. 물질의 빈곤에서 벗어나 쓰고 버려도 철철 넘치는 시대를 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지구상에 기아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도 지구 한 편에서는 1,800만 명이 (그중 대 다수가 어린이들임) 굶어죽고 다른 한편 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과 싸우고 살을 빼는 ‘다이어트’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생명의 기본 질서나 나누어 먹어야 하는 밥의 기본 철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살고 있는 물질적 풍요와 쓰고 버리면 되는 생활양식을 통한 편리함, 그리고 현란하고 끝없는 쾌락의 추구, 이런 것들은 결국 모든 생명들과 단절하고 수탈하는 인간중심주의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유한한 자원을 끝없이 소모하고 고갈 시키는 생산양식에 기초한 문명체계의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 풍요와 기술문명의 놀라운 발전과 고도의 편리함 속에서도 생명의 존엄성이 파괴되어 고통이 심화되는 생명위기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반생명적인 일들이 도처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인간을 위한다며 더 많이 더 힘세게 더 빨리 더 편리하게를 외치며 이끌어온 문명에 의해서 조성된 생태적 위기는 우주 자연이 스스로 짜깁기 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 버려서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위협당하고 제국주의자로 군림한 인간 또한 그 생명을 위협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문명 속에 살아온 우리는 조금만 이라도 생명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생명의 위기가 이미 예견 되어 있었던 것이고 언젠가는 들어 나야하는 필연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사람마다 생명의 실상이나 생명위기에 대한 인식의 깊이 에 차이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면 한다고 해서 벗어나지는 것이 아닌데도 애써 외면하고 피해 보려는 어리석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렇게 생명이 위기에 처한 책임은 전적으로 오직 인간 에게만 있다는 것과 인간만이 인간 중심사상으로 무장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과 자연에게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인류에게 절실하게 요구 되는 것은 오류의 역사에 대하여 정직하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과 또한 그 일을 통해서만이 새로운 모색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국내적으로 돌아볼 때 우리는 서구 사회가 200여년이 넘게 걸려서 이룩한 근대화를 불과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성취했다. 그야말로 압축 성장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급진적인 근대화의 이면에는 추측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수모와  희생과 아픔의 상처가 남아있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숨어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반생명적인 여러 현상들을 물질적인 번영을 이룩한 찬란한 빛 뒤의 어쩔 수 생겨난 어두움정도로 설명하려한다. 그러나 그 시기 손상된 것이 생명의 존엄이나 인간성의 말살, 가치관의 훼손 등 절대가치의 것들 이라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덮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손상된 채로는 앞으로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격고 있는 진통 중에 상당부분이 지난시기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또 어떤 이는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는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써 보다는 동물이 되어야 존재 할 수 있을 만큼의 격동 속에서 가혹한 경쟁과 인성의 파괴를 필요로 하는 세상 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척박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명이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따라서 오랜 세월 우리는 너는 너 나는 나,  인간은 인간 ,자연은 자연, 본래부터 나누어진 남남으로 인식하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실상을 모른 채 처음부터 분리 독립되어 있는 것이므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인간끼리만 산다는 인간중심사고에 빠지고 자기중심의 이기적 사고는 모든 인간과 자연을 경쟁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너와나의 관계에서는 소유, 독점, 지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적인 삶으로 이어 졌으며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정복하고 파괴하는 폭군으로 자리잡아갔다. 살펴 본 것과 같은 이런 현상들은 생명의 실상에 대한 무지와 그 무지에 근거한 삶의 방법이 근본적인 원인 이었다. 생명의 존재와 실상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고 또 도외시 했다. 근대화와 경제 성장만 이룩하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되는 것으로 주술을 걸고 있었다. 군사 독재는 날로 탄압이 심화돼서 반독재 운동에 서있는 많은 단체들은 수없는 희생을 치르게 되고 특히 80년의 광주를 겪게 되면서 운동방법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도출  되기도 했다. 참으로 스산하고 생명이 메말라가는 세월이었다. 나 개인의 판단일 수 있겠지만 80년대 초 중반 원주에서 시작한 생활협동조합운동과한살림 운동은 신선한 바람 같은 것이었다. 특히 한 살림 운동은 가농(한국 가톨릭 농민회)과 다른 조직 이지만 상호 보완 관계에 있으면서 가농이 생명운동으로 방향을 전환 하는데 이론적으로 뒷받침이 되었다고 보고 직 간접으로 많은 영향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가농이 (1964년에 설립되었으니 40년의 역사다) 1983년의 활동 계획에 (농촌사회 민주화)와 모두 하나 되는 (공동체적 삶의 실천)을 향후 3년간의 활동 목표로 정하게 되는데 이것은 가농 내부의 변화와 외부의 영향이 동시에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앞으로 가농이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하는 생명운동의 효시로 볼 수 있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담론으로 새로운 운동에 대해서 많은 연찬이 있었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 졌다. 당시 반독재 운동의 정서에서 이일은 운동 대열에서 회피하는 것으로 비춰 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기존 운동의 방법에 대한 부분적인 반성과 조직 내에 새로운 기운이 생기고 그런 기운들이 모여서 창립한지 20년이 되는 해에 구체적으로 생명운동의 작은 씨가 생긴 것이다. 또 공동체 운동의 중요성을 문화에서 찾고자한 공동체 문화를 위한 지원활동은 적절했다. 생활공동체 문화 활동으로 마을단위 풍물패조직 탈춤놀이 마당극 운동 등이 이시기에 활발했다. 거듭 말 하지만 이 운동이 처음부터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생활공동체 운동이 생소하게 생각되는 회원들의 이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마침내는 새 운동 을 위한 연구 위원회가 나눔과 섬김의 생명공동체 운동을 1990년 대의원총회에 제안하고 대의원들이 앞으로의 주된 활동으로 생명공동체 운동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1990년 전국농민 총 연맹 창립과 더불어 한국 가톨릭 농민회는 생명 공동체 운동으로 본격적으로 전환하여 생명운동에 나서게 되고 대안운동으로 1994년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 본부가 조직되고 같은 시기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창립되었다 이 두 단체들이 생명공동체 운동과 생명농업 운동을 수행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전국적으로 2-30여개의 생산 공동체가 활동하고 도시지역에서는 더 많은 생활 공동체들이 먹을거리와 환경중심 활동에 머무는 단계와 생명 문제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도 보이는 나름대로 성과도 있다. 특히 귀농운동은 현대문명의 한계를 바로보고 현대문명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다양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즈음(2001년)에 범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해서 2001년 5월26일 지리산 달궁에 5,000여명이 모여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로 출발한 후 여러 과정과 1,000일 기도를 마치고 2003년 11월 달에야 창립한 지리산 생명평화 결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을 시작한 것도 일천하고 여러 가지 극복해야할 과제도 많다는 것을 알면서 이 운동을 주목 하는가는 이제까지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이 처음이기 때문이고 또 운동의 일환으로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시작해서 전국을 계속해서 순례를 하는 한편 몇 군데 도시에서는 생명 평화 학교라는 이름으로 담론확산의 장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에 종교인이 서있고 불교적인 방법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또 왜 지리산이냐 하는 지역성의 문제도 제기되지만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또 이 운동의 운영 위원으로 거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 전체로 볼 때 현재에도 생명운동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또 지금 하는 운동이 진정한 생명운동인가 하는 데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고 할 것이다.


■ 내다보며


우리의 생명운동이 태동된 시기는 20여년 이 되고 있지만 대중운동으로 자리 잡기는 10여년 안팎이 되는 것 같다. 이전보다 생명이나 평화라는 말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 뿐 우리의 생명운동이 생명운동의 중심에서 열심히 하는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 생명운동의 본질에서 벗어나있는 것 같고 또한 그 운동의 파장도 미미해 보여서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생명 운동이라는 것은 그렇게 일반화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생명운동을 보는 시각이 어떤 운동 단체에서는 운동단체에서 도를 닦자는 것 정도로 이해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사회는 생명이나 평화라는 담론에 대해서 묘한 공허감을 갖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생명의 실상에 대해서 또는 생명의 존재원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제대로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자신이 매일 운전하는 자동차만큼도 ‘컴퓨터’ 만큼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나 평화 이런 것들은 나와 무관하거나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할 일 없이 논하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앞으로 생명운동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야 할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서부터 생명운동이 지향하는 세상의 모습, 이나 생명의 경제, 생명의 문화, 지역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 나아가 생명의 정치 등 다양한 부문의 일들이 여러 단계에 거쳐 생명의 관점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한다. 이것은 안팎의 요구가 동시에 있을 것이다. 운동단체 내부의 필요와 주변 대중들에게 생명운동의 구체성을 들어내 보이기 위한 필요도 있을 것이나 내부의 필요가 더 크고 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2004년 이 시기에 생명 평화의 담론을 내 걸고 담론을 키우려는 것은 참으로 시의 적절하고 의미가 크다. 많은 징후들로 미루어 볼 때 짧은 기간이지만 반생명적으로 이끌고 온 문명이 끝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징후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생명운동이 그 와중에서 제대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미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관점으로 사는 사람은 이미 충만한 생명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이 운동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운동을 하는 방법이나 사람들이 얼마나 대중적인가 하는 데에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본다. “생명 그러나 그것은 결코 목격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 속에 있으면서 또한 그것들 밖에 있다.” 생명에 대해서 짧게 설명한 어떤 학술지의 한 구절이다 참 잘 설명하고 있다고 동의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생명 인식에 대한 깊이의 문제인가? 


1) 장태원, 한국YMCA 사무총장들이 함께 하는 생명평화워크숍 - 주제:  쉼, 비움 그리고 성찰, 2005년 7월 7일(목) 오후2시 - 9일(토) 오후1시, 우이동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 출처: 2004년 11월 12일-14일, 세계생명평화포럼

생명운동 돌아보고 내다보며(장태원).hwp

센터 출판물 "생명평화운동 구상"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