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YMCA운동의 역사적 이해
장 규 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 한국YMCA운동 100년사 출판위원)
YMCA운동은 경계선에 그물을 쳐 하나님나라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운동이다.
전파와 수용 / 운동과 사업 / 종교와 정치 / 기독성과 청년성의 어울어짐
역사 속에 YMCA가 서 있는 ‘경계’라는 자리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의 장이다.
1. 한국YMCA 출범의 민족운동사적 맥락
한국YMCA는 개화개혁운동의 공론장을 마련한 독립협회와 협성회운동을 계승하며 이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한국 YMCA는 대한제국 정부가 민회(民會)를 금지시키고 독립협회를 해산한 이후인 1899년 가을, 배재학당을 비롯해 관립 외국어학교 등에 다니던 150명의 청년‧학생들이 연명으로 YMCA의 설립을 청원하면서 태동하였다. 당시 그들은 하류층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교회와는 별도로, 자신들과 같은 양반 지식층 청년들이 모일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여병현을 간사로 하여, 정회원‧준회원‧명예회원의 회원조직에 선교사들과 정회원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아펜젤러(H. G. Appenzeller)의 집을 임시 회관으로 빌려 YMCA를 조직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가 독립협회나 협성회같은 정치단체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 정부의 저지로 그같은 시도는 일단 무산되었다.
이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는 뉴욕의 북미YMCA 국제위원회에 한국YMCA의 창설을 청원하였고, 이러한 국내의 요구에 바탕하여 북미YMCA 국제위원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