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중2병’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대2병’이라는 신조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대2병’이란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이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대학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시작된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면서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들이 막상 대학에 진학 한 후 전공이 맞지 않거나,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우울이나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사례를 통해서 이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 중상위권 대학 화공생물공학과 2학년생에 재학 중인 박모(25·남)씨는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몰라도 취업걱정으로 초조하다”면서 “선배들처럼 취업하면 좋겠지만 취업해도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솔직히 졸업 후 무얼 할지 모르겠다”면서 “부모님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라고 하는데 어렵게 이를 받아도 교수가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취업과 학업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학의 사회학과 2학년생인 한모(22·여)씨는 “1학년 때는 과제를 쉽게 해결했는데 2학년이 되니 과제 제출하기도 벅차고, 여기에 학비마련을 위해 알바까지 해야 한다”면서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은 미래에 무엇이 될지 시간을 갖고 생각하라고 하지만 솔직히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였다. 한씨는 “스펙을 쌓으려고 학교 홍보대사도 하고, 기업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지만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취업대신 개인 사업을 하고 싶은데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엄마 아빠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대학교 2학년 때 병에 걸리는 것일까? 대학교 1학년 때는 이제 막 입시에서 벗어나 자유를 즐기느라 현실을 직접적으로 인식할 여력이 없으며, 고민이 있다고 해도 연애나 교우 관계 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 전공과목의 학점 관리가 중요하게 되고 취업에 대한 인식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된다고 한다. 연세정신건강의학과 손석한 박사는 이런 현상이 과거에는 주로 대학교 3·4학년 때 나타났지만 취업이 어려운 요즘 그 시기가 더 앞당겨졌다고 설명한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적성을 찾는 유일한 시가가 되어버린 대학교 2학년 때 환경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다보니 학생들은 병 아닌 병을 앓는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대2병’은 “대학입시 경쟁에 휘말려 청소년기에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대2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은 신체적·연령적으로 성인과 동일한 모습이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2병에 노출된다고 하였다. 나해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에릭 에릭슨(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근거로 하여 인간은 청소년기에 ‘정체성 대(對) 혼돈’ 시기를 맞는데 이 때 ‘내가 누구인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지 못하면 성인이 돼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하였다.
에릭슨에 따르면 인간은 각 발달단계마다 극복해야 할 심리사회적 위기와 발달과업이 있다고 하였으며, 각 발달단계에서의 위기를 잘 해결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특히 청소년기의 주요과제는 자아 정체감의 확립이라고 하였다. 자아정체감이 강한 청소년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동기, 흥미, 가치를 공유하더라도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특한 개인으로 자각하며, 자신의 위치, 역할,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반대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은 정체감에 혼돈을 느끼게 되며,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방황하게 되고 부정적인 정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현재 대학생들이 보이는 ‘대2병’이 긍정적이지 못한 자아정체감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 출처: 조선일보. “대학교 2학년에게만 찾아오는 ‘유령’이 있다?” 2016. 5. 9. 재인용.
나 교수는 “대학 2학년은 인생에서 최초로 ‘책임’을 느끼는 시기”라면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과 성과를 내야 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대학생들은 연애하고, 술 마시고, 학생운동으로 정체성을 찾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이런 유예기간마저 실종됐다”고 하였다. 정체감 유예는 삶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회의하고 대안을 탐색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러서 과업에 관여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비록 정체감 유예기의 청년들이 안정감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며 정체성 성취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도기적 단계이기도 하다.
전문의들은 청소년기에 집단에 소속되어 집단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는 ‘소속감’과 가정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는 ‘탐색’을 경험해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모범생으로 자라나 대기업에 취업해 부모가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정형화된 삶을 선택하는 이들은 소속감은 있지만 탐색할 용기가 없는 이들이다. 즉 정체감의 문제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부모의 기대에 의해서 주어진 가치나 진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취업을 미룬 채 새로운 전공을 선택하거나 자격증 취득에만 몰두한다면,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기피하는 실체가 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다음 단계인 ‘친밀감 대(對) 고립감’ 시기로 이행하는데 문제가 있다. 청소년기에는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면 대학생 시기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과 직업 선택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성을 이룩하는 일이 중요하다. 즉 청소년기에 긍정적인 정체감을 확립한 청소년이 대학생 시기에도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대2병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의 출발점이라고 하였다. “20~40대 가족이 아닌 이성에 친밀감이 형성돼야 연애든 결혼이 가능한데 정체성이 낮아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연애와 결혼 등을 모두 포기하는 도미노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대2병이 지속되면 우울과 피로가 겹치는 만성 정신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대2병’은 대학생활에 대한 실망감, 대인관계 스트레스, 경쟁과 취업에 대한 불안감, 스마트폰 과의존,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등 삶의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대학생들이 ‘대2병’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목표, 가치, 직업, 인간관계 등에서 위기를 경험해보고 스스로 대안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자아정체감을 형성한 사람은 부모를 포함한 대인관계에서도 현실적이며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자아존중감이 높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고 하였다. 또한 지나친 경쟁이 아닌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조재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원론적이지만 삶은 무엇인가를 마련해 놓고 즐기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자기 정체성, 가치관부터 세워야 대2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학과 친구ㆍ선배 등에게 취업 문제 등 고민을 털어 놓는 것도 효과적이다. 우리 뇌는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원은수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혼자 문제를 풀겠다고 고민하면 문제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면서 “객관적으로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하지 않아도 될 염려와 걱정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부모의 경우는 자녀가 느끼는 감정과 대학 진학 후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자녀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자녀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역할도 필요하다.
<참고한 자료>
서울경제. “‘SBS 스페셜’, ‘대2병 학교를 묻다!’ 청춘들이 아픈 이유는?” 2017. 4. 2. http://www.sedaily.com/NewsView/1OEHQ58Y97
조선일보. “대학교 2학년에게만 찾아오는 ‘유령’이 있다?” 2016. 5. 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09/2016050900142.html?Dep0=twitter&d=2016050900142
코스모폴리탄. “내가 혹시 대2병?!” 2016. 9. 21. http://www.cosmopolitan.co.kr/article/RetArticleView.asp?strArtclCd=A000005698&strFCateCd=AIAC
한겨레신문. “타율적 목표 ‘입시’ 사라지자 무기력해진 ‘대2병’.” 2017. 5. 30. http://www.hani.co.kr/arti/economy/it/796800.html
한국일보. “괜히 괴롭고 초조하고···‘大2병’을 아시나요.” 2016. 5. 31. http://www.hankookilbo.com/v/47b20246abc54d32a8ac4656c42911e9
* 글쓴이 장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