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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해수부)25오후 915부께 세월호 선체 전체가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무능력과 실종자 수습 등의 다양한 이유로 진행되지 못했던 세월호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점은 단 한 가지뿐이다. 왜 이렇게 인양이 늦어졌을까? 생각보다 인양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한 것일까? 이렇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일인데, 그동안 인양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궁금증은 단순하다. ‘, 그랬을까?’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모임인 4·16 가족협의회가 밝힌 세월호 인양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는 세월호 참사부터 김진태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비용문제 등을 이유로 세월호 인양을 반대한 201545일까지이다. 가족협의회는 정부의 인양 노력이 미온적이었던 1단계라고 표현하였다. 20141124일 해수부는 선체 인양 등을 논의하기 위한 선체 처리기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였지만 TF의 논의 진행상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김 의원의 세월호 인양 반대 입장 발표로 여론이 악화되자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말했으며, 2015422일 해수부는 세월호 인양 계획을 발표하였다.

2단계는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업체로 선정된 201584일까지이다. 가족협의회는 이 기간 동안 세월호 특별조사위와 유가족들의 인양과정 참여가 철저히 배제된 시기라고 하였다. 특히 해수부는 기술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스미트 컨소시엄이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인양업체 선정에서 탈락시키고 상하이샐비지를 세월호 인양 업체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상항이샐비지가 세월호 인양에 2000억 원 이상을 쓴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상하이샐비지를 선정했다는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철조 해수부 세월호인양추진단장은 상항이샐비지의 규모와 실적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하였다. 상항이샐비지는 1951년 설립된 중국 국영기업으로 전문 인력을 1400명가량 보유한 대형 해양 구난업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상하이샐비지는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하였다. 이런 해수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피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3단계는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을 시작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까지라고 하였다. 가족협의회는 그동안 세월호에 대한 훼손이 이루어졌으며, 인양작업도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하였다. 가족협의회는 2015829일 세월호 인근 동거차도에 감시초소를 설치하였으며,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 인양에 관하여 수중촬영 협조를 요청했지만 해수부로부터 모두 거절당하였다. 세월호 인양 준비 작업은 기술적 문제 등을 이유로 계속 미루어지다가 기상과 조류 등으로 그동안 세월호 인양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5시간 만에 해수부는 세월호 인양 재개를 기자들에게 알렸다.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은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건 21차 촛불집회를 열었다. 특히 많은 참가자들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국가적인 일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중에서 세월호 미수습자의 온전한 수습세월호 진상규명이 중요한 아젠다였다. 세월호 미수습자는 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어린 권혁규와 아빠 권재근씨, 이영숙씨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9, 현재까지도 안산 단원고에는 2014416일 이후 3년째 주인을 기다는 6개의 책상과 걸상이 놓여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 연주를 즐기던 남현철군, 집안일을 자주 돕고 부모님과 친구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한 박영인군, 수학을 좋아하고 다정하고 속 깊었던 딸 조은화양, 희귀병을 앓는 엄마를 항상 걱정하던 허다윤양이다. 체육을 담당했으며 세월호가 기울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들에게 벗어준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과 사회 과목을 담당했으며 정 많고 따뜻했던 양승진 선생님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이영숙씨,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제주로 이사를 가던 아빠 권재근씨와 아들 권혁규군은 아직도 미수습자로 남아있다.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대학생, 지역사회, 온라인상 등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자발적인 시민들의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진정으로 청소년들을 위해서 정부와 국가는 노력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라는 점 때문에 세월호 세대로 불리기도 한 청소년들의 20164월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로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메르스 사건으로 다시 불안이 휩싸이는 사회가 되었으며, 총선에서는 안산 지역을 치유하겠다며 외쳤던 정치인들 모두 세월호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국정교과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고 하였다.

2017년 현재는 어떨까? 헌법재판소는 31092일간의 탄핵심판을 마치고 법 위반의 중대성은 물론 대통령직 계속 수행과 국민신임 상실 여부 등을 기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였다. 국가의 지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비선 실세에게 맡기고 마치 비선 실세가 대통령처럼 그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분노하였으며, 더 이상 대통령도 신임할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알 수 없는 의문과 석연찮은 정부 및 대통령의 대책 및 반응은 우리 국민들을 더욱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아직도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또한 세월호 인양 후 석연찮은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는 가운데 놓여 있던 방향타가 현재는 오른쪽으로 꺾여 있는 생태로 올라와 배의 운항과 관련한 장치들의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대해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세월호가 인양되기만을 기다렸던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 참고 기다려 보자고 할 것인가? 이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밝혀서 아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고 있으며, 국민들이 정부와 국가에 믿음을 갖고 신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궁금증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공정하고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지도자를 포함한 정부의 지도층과 국회의원들, 좀 더 투명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다.

 

<글쓴이 : 장여옥>


경향신문. “대통령 물러나자 시작된 세월호 인양.” 2017. 3. 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3251709021

 

경향신문. “잊지 않으려마주합니다.” 2017. 3. 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3242203015

 

조선일보. ‘정부가 고의로 세월호 인양 미뤘다?인양, 3년 걸렸나’. 2017. 3. 2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4/2017032402473.html?related_all

 

한겨레신문. “단원고에서 3년째 주인 기다리는 6개 책걸상.” 2017. 3. 23.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7725.html

 

한겨레신문. “‘이젠 돌아오길기억해야 할 세월호 미수습자 9.” 2017. 3. 2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7647.html?_fr=mt2

 

한겨레신문. “잊지 않기 위해멈출 수 없는 10만 촛불.” 2017. 3. 2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7994.html?_fr=sr1

 

한겨레신문. “참사뒤 변한게 없어우리가 바꿔야죠, 투표권도 생겼는데.” 2016. 4. 2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0740.html

 

한겨레신문. “침몰때와 바뀐 방향세월호 방향타 미스터리’” 2017. 3. 27. h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8243.html

 

허밍턴포스트.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파면을 결정한 핵심적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2017. 3. 10. http://www.huffingtonpost.kr/2017/03/10/story_n_152722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