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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장
제 1차 농촌조사와 3대 강령의 발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YMCA는 3․1독립운동 직후 제일 먼저 국제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뛰어든 다른 무대는 즉 농촌사회였다.
이와 같이 YMCA가 농촌사회에 뛰어든 이유와 동기는 크게 나누어 세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이때까지의 YMCA 운동은 도시 중심이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가 발달된 서구 사회에서는 필요하지만 한국과 같이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하고 아직 봉건 사회를 완전 탈피하지 못한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그당시 총무 신흥우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YMCA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미국이나 영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영국 YMCA는 산업 혁명의 소산이요, 미국 YMCA도 역시 농촌에서보다 도시에서 번창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8할 이상이 농촌에 살기 때문에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물론 YMCA의 운동방식이나 설비나 조직은 파리기준을 토대해야 하지만 같은 문제를 가진 청년들기리 모여서 회를 묶어가지고 “그 나라”를 찾고 건설한다는 것이 근본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YMCA는 다른 나라 도시 YMCA의 방식과 설비와 조직을 그대로 직수입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가 사는 농촌에서 새로운 방식과 설비와 조직을 만들지 않고서는 무의하다1) 」
이상 기본 동기는 그 당시 YMCA 지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둘째는, 일반 청년의 경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장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상이 물밀 듯 침투해 들어온 결과 전통적인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조에 대한 관심이 비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서 민중은 방향을 잃고 청년들은 방황했다. 그 당시의 시대상은 그야말로 극도의 혼란과 공포속에 싸여 있었다. 3천만 민족의 순정을 모아 고이 바친 3․1운동의 꽃다발은 야만스런 일본 제국주의 군마의 발굽에 채여 여지없이 유린되었고, 금방 찾을 것만 같던 민족의 독립은 수포로 돌아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신사조만이 휩쓸어 들어오니 여기에는 실망과 비애와 자포자기만이 있을 쁀이었다.
그 당시의 청년들의 고민․실망․퇴폐 사상을 작가 오상순(吳相淳)씨는 1920년 창건된 폐허(廢墟)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이다. 이 말은 우리 청년들의 심장을 삭이는 듯한 아픈 소리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아니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 폐허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 외적 물적인 모든 불행․ 결핍․결함․공허․불만․우울․한숨․걱정․근심․슬픔․눈물․멸망과 사의 악이 쌓여 있다 』2)고 했다. 이러한 시대상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하여 수입된 자유주의․허무주의․무정부주의, 그리고 프랑스의 세기말적인 퇴폐주의와 병적 문학의 영향이라 말할 수 있다.
셋째로, 국민의 경제 파탄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문화 정치를 하는 체하면서 사실은 경제면에 있어서는 더 가혹한 착취를 했기 때문이다. 1920년부터 일제는 15년간에 걸쳐 장기 계획으로 한국 쌀을 일본으로 빼돌릴 계획을 했으며,3) 그 부족한 양곡은 만주로부터 들여오는 조․수수․콩 등으로 보충하는 통헤 한국인의 경제 상태는 억망이었다. 그 결과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3.4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지주가 7년 뒤인 6.10 만세가 일어나던 해에는 3.8퍼센트로 증가하였고, 소작농의 경우 1백만 3천 호였던 것이 7년 뒤에는 1백 19만 3천 9호로 격증하게 되었다.4) 그리하여 농토를 잃은 농민은 산에 들어가 화전민이 되든지 아니면 북간도나 만주로 남부여대하여 이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직면하여 YMCA가 제일 먼저 벌인 운동은 전국 순회 전도운동이었다. 즉 1920년 7월 1일부터 12월 말까지를 기한하여 전국에 전도대를 파송하게 됐다.5) 그 전도대의 대장 김필수(金弼秀) 목사는 베드로전서 4장 7절부터 11절까지의 성경 말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심하여 기도하라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느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전도 대원들을 격려했다. 6) 한편 윤치호(尹致昊) 회장은 『무엇보다도 상공업을 발달시켜야 하겠습니다. 세상만사가 돈 없이 되는 일 없고, 먼저 육체의 생활을 유지 못하면 도덕도 지킬 수 없으니 상공업을 진흥시켜 실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조선인은 종래 실업을 천시하기 때문에 이 모양이 됏으니, 어서 적은 것이라도 상관말고 상공업을 진흥시켜야겠습니다』7)라고 외치는가 하면, 반면에 이상재(李商在) 명예 총무는 『무엇보다도 도덕심을 양성해야겠소. 조선인은 과거에 도덕과 정치가 부패한 까닭에 시기와 질투심이 많다․․․예수는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으니 그것을 배우서 시기심을 없애야 하겠소․․․․』8) 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보다 더 구체적인 운동은 농촌운동이었다. 우선 신흥우 총무는 한해 겨울을 농촌 조사에 보냈다. 즉 그는 1923년 겨울 서울서 약 30리 떨어져 있는 「자마장」이라는 동네와 약 100리 되는 「부곡리」란 동네에서 지냈다. 3개월간 농촌에서 농민들과 같이 자고 먹고 살면서 농촌사정을 자세히 조사했다. 우선 농민들의 실정․관습․가족문제․생활․교육․종교․심리상태 등 전반적인 진상 파악에 노력했다. 이것이 제1단계 농촌 조사이다. 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신흥우 총무는 즉시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다음과 같은 기본 강령을 발표했다. 즉 『우리는 모든 국민들의 경제적 향상과 사회적 단결과 정신적 소생을 도모한다』라는 강령을 발표했다. 여기의 3대 목표에 대하여 신흥우 총무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정신적 소생에 대하여9) ․․․․1855년 YMCA 대회가 파리에서 개최되었을때 파리기준이라는 기초선언을 낼 적에 『청년들을 하나로 뭉치고 또 그 힘을 합아여 청년들 가운데 그의 나라의 확장을 힘쓴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한국과 같이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을 잃고 살 때에 YMCA 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농촌운동도 농촌 청년들의 정신을 부활시키지 아니하면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농촌을 조사해보니 농촌의 청소년들은 거의 다 자포자기 상태에 있다.『저희들 같은 촌놈들이 뭘 압니까? 땅이나 파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오』 한다. 이것이 나라 독립에 제일 큰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나”라는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나”도 하나의 사람이다. “나”도 다른 사람과 같이 눈이 둘 있고, 귀가 둘 있고, 팔다리가 갖추어져 있다. 나쁜 사람이 되려며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며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 보다 더 큰 사람도 없고 “나”보다 더 작은 사람도 없다. “나”도 내 한 몫의 짐을 질 수 있다.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나”와 “너”의 힘이 하나가 될 때에는 실패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그 순간에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
(2) 사회적 단결에 대하여10)․․․․․․ 어떤 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설비도 있어야 하고, 건물도 있어야 하고, 조직도 있어야 하는데, 영국 청년들이 YMCA 운동을 시작할 때는 시설이나 건물도 없이 다만 그들이 굳게 뭉침으로써 큰 세력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끼리 모여서 회를 묶어가지고 운동을 할때에 나라를 찾게 되었다. 한국의 한 농촌에는 30호도 있고, 50호도 있고, 100호도 있다. 그 속에서 청년들이 의논하여 뭉칠 때에는 그것이 유일한 시설이 될 수 있고,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농촌사업이라고 하지마는 이것은 농촌청년들끼리 서로 힘을 합하여 공동의 버녕과 발전을 위하여 일하게 하는 운동이라야 한다. 이름이야 뭐라고 하든지 농촌사업은 거기 있는 청년들이 작정하여 가지고 야학도 조직하고, 공동으로 사고팔 수 있는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서로 상조상부하는 공제조합도 만들어서 자기네 문제를 자기네 공동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하고, 향상시키게 하는 운동이다. 사람은 부지런하고 정직만해도 잘 살 수 없다. 사람은 사호적 동물이기 때문에 잘 단결해서 살 필요가 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네 경제생활을 잘 조직화해서 살 수만 있다면, 한손으로 다섯 말의 쌀을 들 수 있던 사람이 열섬도 들 수 있고, 스무섬도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금전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도 잘 조직만 하면, 이리 옮겨 놓고 저리 옮겨 놓고 하는 가운데 자기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
3. 경제적 향상에 대하여11)․․․․․․ 우리의 경제 생활이 나아지고 잘 살게 되려면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먼저 각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먼저 글을 배워야 한다. 가갸거겨부터 배워야 한다. 영웅이 따로 없다. 훌륭한 영웅은 “당신네”들이 깨달으면 영웅이 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이 부유하게 사는데 우리는 그들의 힘을 빌어서 그들에게서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부와 행복은 “당신네” 마당에서 찾을 수 있고, “당신네” 울타리 안에 있다. 당신네 동네에 있는 것, 시뻘겋게 된 산, 허옇게 물로 씻겨 나간 강변, 이런 것을 잘 이용할 것 같으면 당신네가 잘 살 수 있다. 씨뿌리는 방법, 종자 고르는 방법, 밭가는 방법, 축산법 등을 배워 주기도 해야 하지만, 경제 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정신적 문제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 소생은 경제 향상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는 농촌 청년들에게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한다. 농촌으로 갈때에는 낮에는 그들이 일을 하니까 밤에 가야 한다. 우선 흥미를 끌어야 하니까 무슨 놀이도 해 보고 악기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어떤 집 마당이나 마루를 얻어서 재미있게 놀아준다. 차츰 친해지면 동네 사람들과 얘기도 한다. 절대로 얻어먹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허리에 차고 있던 백철로 만든 밥그릇을 꺼내어 같이 먹는다. 이렇게 되면 단박에 그들은 새사람이 된다. 금방 달라진다. 누가 이걸 하고, 저걸 하소, 하지 마소, 그만두시오 하지 않더라도 자기 정신만 차리게 되면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잘 살게 된다. 경제 향상은 정신적 소생에서 오는 법이다.
이상 신흥우 총무의 설명은 그의 방송 녹음에서 찾아 내어 간추린 것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YMCA 농촌 운동의 기독교적 정신과 사회적 방법이 무엇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