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11~13일에 강진다산수련원에서 열리는 호남지역YMCA 신입실무자 연수에서 청소년운동을 중심으로 강의할 원고입니다. 각주가 있습니다. 원본 파일은 개인홈페이지(   http://www.youthauto.net/2386   ) 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YMCA운동의 얼굴과 마음, 그리고 그림자

- 청소년운동을 중심으로 신입실무자 분들에게 전하는 글 -

1. 여는 글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을 다양하게 정의합니다. 학자마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에 따라 정의를 내어 놓았더군요. 예를 들어 홉스는 모든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은 자기쾌락 또는 자기보존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고 했는데, 근본적인 심리적 동인이 쾌락에 대한 욕망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심리학적 쾌락주의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연적 욕망을 굴레(bondage)로 보았지요. 따라서 인간의 행복은 이들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적용해 변형시키는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이런 견해는 홉스와 대조될 뿐만 아니라 흄의 입장과도 반대되는데 그것은 스피노자가 이성을 정열의 노예가 아닌 그 주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와 루소의 전통을 계승한 칸트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행동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는 단지 이성적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욕망에 기반을 둔 모든 행동을 가언적 명령(hypothetical imperative)이라고까지 명명했습니다. 브리태니커, 위키 등의 백과사전에서 욕망(desire)의 기준을 학자별로 정의한 내용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욕망을 통틀어 "인간의 행동을 야기 시키는 동인(動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마음속에 있는 것과 표출된 것은 다르다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이러한 욕망을 심층심리학자들은 사회적 인간으로서 조직에서 부여받은 얼굴인 페리조나(persona,얼굴)라고 하는 외적 인격과 함께 내적 얼굴인 젤레(Seele, 마음)로서 자아의식, 즉 내적인격과 함께 무의식인 샤텐(Schatten,그림자)으로 크게 세 가지 틀로 나누었습니다.

민간단체, 그것도 기독교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념을 최상위 가치로 가지고 있는 YMCA라는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이 세 가지 인간의 욕망에 충돌 지점이 어디인지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자기를 실현한다는 말은 심층심리학자들이 주장했던 '얼굴'과 '마음' 그리고 '그림자'를 통합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심층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통합의 욕구, 즉 자기 실현은 본능적인 요구라고 말하더군요.

이 세 가지 '얼굴'과 '마음' 그리고 '그림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힘일까요? YMCA에서 일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은 무엇일까요?

2. 새로움의 질문들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얼굴, 마음, 그림자 이 세 가지에 연계해 우리가 YMCA 실무자로 함께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해 봅니다. 신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질문에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얼굴'은 무엇입니까? 조직에서 부여받은 사회적 인간으로서 체면이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둘째, 내적 얼굴인 자아의식이라 일컫는 우리의 마음은 무엇인가요? YMCA를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명명했습니까?

셋째, 무의식인 그림자는 무엇입니까? 그림자를 인식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추측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일을 시작하는 이 터전에서 우리에게 인지되는 그림자는 어떤 것일까요?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결국 이 세 가지 '얼굴과 마음, 그림자를 통합해서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강조합니다. 당연히 스트레스는 이 세 가지의 불일치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성취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과 사회적인 위치에서 행해야 할 일의 차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YMCA라는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시민운동단체에서 자신의 '마음'과 '그림자'가 '얼굴'과 일치할 거라 선택하고 소명의식 가지고 참여했는데 사회적으로 주문된 기대치 즉, 얼굴인 페리조나 자체가 자신의 내적 소명과 불일치하는 일들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얼굴(persona)에서는 이념, 철학, 가치 등을 운운하며 '무엇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YMCA조직에서 선배들이 하나님 나라, 생명, 평화 등의 무수한 단어와 문장들을 쏟아 내며 귀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강변하기까지 합니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귀한 일이고, 나도 그러한 조직에 합류했다는 것에 어느 정도의 자긍심도 갖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월급문제를 들여다보게 되고, 다른 기관시설과 별로 다를 것 같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Seele)은 더 복잡합니다. 얼굴에서는 조직의 목적과 가치, 철학 때문에 마지못해 그런가 보다 일을 추진하지만 내적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종교적 신앙심으로 내적 마음이 정리되어진 분들은 얼굴(persona)에서 추구하는 미션에 의해 운동에 참여했으나 일을 진행하다 보니 교회문화와 비교하며 세상의 가치와 별반 다름없는 소모적인 일로 치부하여 마음이 힘겨운 분들이 계십니다. 이와는 달리 직장 개념으로 취업한 분들이 계십니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관,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청소년수련관 등의 위탁 시설을 통해 입사한 분들은 신앙공동체 또는 기독교사회운동을 행하는 운동체로서 인식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발현할 수 있는 직업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며 '입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조직의 이념과 철학을 설명하며 기관 안에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YMCA이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며, 급료가 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분들의 마음은 복잡해집니다. 외적으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발현하는 과정가운데 의미를 찾지 못하고 다른 기관단체와 비교하기 시작할 때 내적인 힘겨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은 근무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선배들이 본을 보이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무의식인 그림자(Schatten)는 복잡한 양상을 만들어 냅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기에는 이 글 안에서는 역부족입니다. 다만 이러한 무의식도 기본적으로는 얼굴과 마음이 양산한다는 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한다는 이러한 무의식의 세계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마음과 얼굴이 평화로워야겠지요.

다양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얼굴은 조직의 이념과 가치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정작 조직에 들어온 이후 무능함으로 일관하며 어떠한 목적성을 논하기에 앞서 세상보다 작은 인건비지만 이정도의 일로 받는 급료에 만족하며 안주합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니 직급은 올라가는 것 같고, 기관시설을 수탁 받으며 기관장 자격으로 파견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더 큰 문제도 발생시키나 기업과 달리 무능에 의해 내쳐지는 경우는 적기에 그 자리에 끝까지 보전합니다. 그러면서 행하는 말들이 가관입니다. 노송이나 굽은 나무가 오랫토록 산을 지킨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 굽고 오래된 나무 때문에 주변의 작은 나무들이 빛을 못 받아 메말라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20대 최 후반부와 30대를 YMCA라는 조직의 틀을 중심으로 부족한 삶을 영위하며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실무지도력이라 일컫는 간사님들과 기관시설 위탁 후 입사하는 일반 직원들까지 다양한 분들이었습니다. 닮고 싶은 성품과 운동성을 발휘하시는 선후배 간사님들이 계셨습니다. 만나고 나면 눈물이 고일 정도의 열정적인 삶을 영위하시는 선배님들도 계셨습니다. 전혀 다른 성향의 분들도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평생 목숨을 건다는 표현을 해가며 '운동'을 강조하며 일을 시작하였지만 일 년을 버티지 못하시고 사직하시는 분, 후배에게 자신의 업적 비슷한 활동 경험을 강조하며 입으로는 즐거움을 주었으나 행함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10년 전 이야기를 10년 후에도 계속 반복하며 예전에 그랬으니 너희들은 잘하라 강조하며 자리보전하시는데 힘겨움을 지니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재정의 힘겨움을 이야기 하며 떠나시는 분들, 조직 내의 갈등을 지속해서 일으키거나 무능으로 일관하며 주변 조직과 운동을 모두 깨버리면서도 끝까지 안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얽히고설키며 조직을 유지합니다.

일을 시작하며 우리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전문성이란 다른 이들보다 '무언가 더욱 잘하는 것'인데, 제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한참 후에 아주 미미하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기술이나 어떠한 기능적인 반복적 기술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전문성은 '운동성'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뜻과 이념, 그 철학을 사람들과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조직한다고 합니다. 조직은 단순히 소수의 의식화를 위한 조직화도 있으나 조금 넓게 보면 세상의 조직화된 삶의 양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 한다는 개념도 있습니다. 새롭게 입사하신 분들은 YMCA의 운동성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성이라는 표현은 저의 부족한 단어 선별에서 오는 것이니 운동성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입은 새로움을 뜻합니다. 시작인 것이지요.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처음, 새로움, 신입은 뚜렷한 목적과 가치가 내제해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고 믿습니다. 새로움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움의 이유를 자세히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이 새롭게 시작하는 일터의 존재 이유와 내가 취업한 이유가 맞지 않는다면 이곳에 오래토록 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순히 돈벌이 정도로 입사했다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급료 조금 받고 좋은 일 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코미디입니다. 주변에 YMCA활동이 좋은 일이기에 행한다는 자위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부정적인 일들을 제외하고 세상의 '모든 일'은 '좋은 일'입니다. 운수업, 환경미화, 이용업, 요식업 등 우리네 삶에서 나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삶에서 나쁜 '일'은 없어 보입니다. 모두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YMCA에 있기에 목적과 이념에 충실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YMCA는 이념공동체이기에 이러한 이념을 현실에 맞추어 어떻게 체화하여 삶을 영위할 것인지 끊임없는 고민과 기도와 학습에 따른 실행과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또한 저의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를 운동방향에 맞추어 의식화 하는 환경이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간과한 채 오직 자신의 밥벌이 수단으로서 YMCA를 이용하지는 않는지 제 안의 저를 보면서 항시 힘겨워 합니다(정건희, 2010). 그리고 어설픈 선배라는 입장에서 되묻습니다.

"조직의 성장이나 단체 내에서 동료의 성장을 위해 돕기보다는 비방하고 헐뜯어 어떻게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승진이나 하려 하지 있습니까?"

"별 관계도 없는 타 지역 간사나 비방하고 자신의 작은 이기성을 채우고 정치하지는 않습니까?"

"후배들이 들어오면 동역자라 여기고 지도하여 YMCA지도력으로 성장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잔일이나 시키고 이용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지역사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근본적 성찰을 위한 끊임없는 학습과 토론과 기도를 하기 보다는 수년전 아니 수십 년 전 귀동냥 했던 몇 가지 이야기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5년 전에 이랬는데, 아니 10년 전에 이렇게 힘들게 일 했는데를 반복하며 과거 고생했던 이야기들만을 수년째 반복하여 전하며 근래 수년 동안 6시 '땡'하면 무조건 귀가해야 하는 공무원(?)같은 생활을 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내어 놓고 삶에 본이 되기 위해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기보다는, 미래에 자신의 위치만을 걱정하며 한탄하지는 않습니까?"

"지도력 성장을 중요한 요체로 여기는 YMCA에서 자신을 통해 몇 명의 간사지도력이나 운동 지도력이 배출되었는지 아십니까? 오히려 자신 때문에 최선을 다했던 훌륭한 지도력들이 떠나지는 않았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하고 보니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다. 부끄러워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저 또한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합니다. YMCA 목적문은 제 삶이며 희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도 사람이 행하기에 관계에서 오는 여러 일들이 만들어 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3. 질문의 이유

신입 실무자 분들에게 묻습니다.

좋은 일 한다고 오셨습니까? 신앙 때문입니까? 세상의 변화 때문입니까?

이러한 질문들을 나열하는 제 모습을 깊이 있게 보게 됩니다. 제가 과연 이러한 질문들을 던질만한 자격이나 되는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행하는 청소년운동의 가치와 이념, 철학의 실현을 위한 사업의 정합성만을 논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열심히 던지며 살았습니다. 그 근본 가치를 실현하면 그만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자신의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몇 가지 가치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부분만 열심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의 가슴 깊은 곳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인데 세상을 바꾸려 하나? 내가 무엇인데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하지? 그렇다면 나는 변화시키려 하는 대상 분들의 모델로 내 자신이 완전히 변화되어 있는가? YMCA가 생명으로 여기는 '하나님 나라'를 내 자신은 지금 이 순간 실현시키고 있는가? 그 실현을 위해 청소년들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들과 타 지역 국제네트워크까지 연계된 분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를 완전히 개방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깊게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변화 운운하겠습니까? 부족하고, 부족하고 또 부족하여 현재 이 모양인 것을요. 요즘에는 이런저런 자리에 초대되거나 강사로 초청될 때면 부담스럽기 이를 때 없습니다. 대학, 시설, 단체 기관 등에서 그 동안 되지도 않은 소리를 너무도 많이 내 뱉은 것 같아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제 자신을 다시금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제 안의 저와 마주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사람도 살아가며 무언가를 해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청소년사업을 행하는 이들과 YMCA 동역의식을 가진 실무지도력 분들에게 어설프나마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신입이라고 호칭하는 분들에게 미천하나마 '선배로서 이러한 전례도 있었구나'라는 작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의 장단점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합니다. 철저히 저의 경험 안에서의 주관적인 관점입니다. 이 글을 읽은 선후배분들이 언제든지 비판하시고 제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YMCA는 다른 법인과 달리 청소년수련관,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사회복지관, 지역자활센터, 청소년문화의집, 사회체육센터, 어린이집, 유치원 등 다양한 기관을 운영합니다. 위탁하거나 다른 기관시설을 운영하지 않은 채 법인 자체의 특성을 살려 활동하는 곳도 있습니다. 청소년시설과 기관은 여타 관련 운영법인에 비해서도 전국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여기에서 복잡한 양상이 만들어 집니다. 사회복지법인이거나, 청소년법인 또는 체육센터를 운영하는 기관일 경우에 일어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전혀 다른 학문배경과 사람들이 법인을 중심으로 함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부정적인 부분도 존재하나 긍정적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바로 처음부터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대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법인내의 조직 관점에서 전체적인 사명과 공동체성을 발현하지 못할 경우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공동체로서의 근본적 이유와 타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같은 학문적 배경과 공동체성을 공유하는 조직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전혀 다른 경험과 활동 영역 또한 괴리되어 있으면서 YMCA라는 테두리에서 동역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려워했던 부분을 설명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사회체육은 대부분 체육학과 분들이 졸업하고 참여하나, 시민운동영역이나 청소년영역은 참으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분들이 참여합니다. 신학, 사회복지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기계공학에 토목공학까지 다양한 학문적 영역에 여러 일들이 존재합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토록 일하며 관련 기관 한 곳을 운영하기에도 버거운데 사회에서 시민운동 판에서 기독교적 신앙을 가지고 운동했던 이들이나 사회체육을 통하여 아기스포츠단 등의 활동만을 지속하다가 시설이나 기관을 위탁 후 장급 자리로 이전할 때의 문제도 대두됩니다. 또한 한자리에서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만 쌓아서 어떠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여러 일들을 추진하며 힘겨워 소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떠한 대안이 있느냐 하면 뚜렷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가능하면 평안하게 제 안의 저를 자세히 보는 게 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소년운동을 중심으로 신입 실무지도력분들에 대한 원고이기에 YMCA의 청소년운동에 대한 아주 짧고 간단한 내용을 기본적 개념정도로 서술하겠습니다.

4. 내안의 YMCA청소년운동

1) 청소년YMCA

운동은 뜻과 이념, 그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행하는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YMCA의 최상위 이념은 목적문에 녹아 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한국YMCA 청소년운동을 정의하면 이러한 목적문을 이루기 위해 청소년들이 행하는 활동을 뜻합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인 청소년YMCA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고교Y(하이와이)라는 표현에서 청소년YMCA가 나오게 된 이유와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소년YMCA란 YMCA의 목적문(Mission Statement)을 이루기 위해 과거 중학Y와 고교Y, 개별 동아리회(Club)활동의 혼합 모임의 이름입니다. 또한 지역마다 존재하는 청소년동아리연합회를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지요. 과거 중·고교에 진학하는 학생만을 회원으로 인정하는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권리적인 측면에서 위치권의 한부분임에도 청소년기 거의 대부분 이러한 학생이라는 위치권 하나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학교를 자퇴하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이 아닌 청소년들이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소수였지만 이러한 청소년들을 배척하고 중학Y, 고교Y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단체의 사명(목적문)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단체의 청소년들을 대표하고 대변할 수 있는 조직체를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2004년 한국YMCA전국대회의 마지막 날 청소년포럼에서의 제안을 바탕으로 현재의 전국 청소년YMCA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제안했던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 단체에서의 조직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청소년 조직은 무수히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우리 목적에 따른 운동 내용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이며, 그 이념에 동참하는 청소년을 어떤 방법으로 동참 시킬 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역마다 분파 되어 있는 청소년을 하나로 묶어 정책적으로 운동의 결과를 유추해 낼 수 있는 힘을 어떻게 모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타 청소년단체들은 힘을 자신들뿐만 아니라 타 조직과 연계하여 내용의 결실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 조직 내에서조차 청소년조직체를 연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타 단체와 같이 자기 조직과 타 기관간의 조직을 연계하는 것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우리 안의 조직체조차도 연대할 수 있는 연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YMCA역사 속에서의 다양한 조직에서 실질적인 운동을 담보했듯이 지금의 고교YMCA나 동아리연합회 등 지역YMCA에 산재해 있는 많은 조직을 연계하고 운동의 내용을 결집하여 진행시킬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따라서 전국적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우리 조직체에서 최소한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운동의 근본 조직을 형성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전국조직으로서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실무 간사의 입장에서 전국조직체의 틀을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한국YMCA 청소년 조직은 중부, 서부, 동부권의 3개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권역별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그 대표자들 중심으로 연맹차원의 청소년대표조직체를 구성합니다. 각 권역에서는 지역 조직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지역마다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별 준거집단 형식과 회원중심의 고교Y, 학교 내의 동아리조직과 회관 중심의 동아리 연합회, 수련원․문화의 집 등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을 각 분야별로 대표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별 대표자가 권역별 대표성을 이끌어 내고 권역별 대표가 전국연맹단위의 대표성을 갖도록 조직한다는 것입니다. 방법으로는 동령회 만큼은 권역별로 나누지 말고 전국연맹단위에서 진행하되 대도시나 소도시나 각 지역별로 참가인원을 대표청소년 몇 명(약 5명 미만)으로 제한하여 전국적 조직체를 매년 구성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대를 중심으로 정책적 내용은 정리해 나가며 권역별(중부․서부․동부) 대표성의 조직체를 중심으로 하령회를 준비했으면 합니다. 따라서 차후 진행하는 동령회의 내용은 YMCA이념과 역사, 리더십, 선거(민주적 의사수렴구조)를 중심으로 한 집중 교육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권역별로는 학교 내의 고교YMCA, 위탁시설, 회관중심 동아리조직 등 몇 가지 분야로 나누어 대표자들을 선출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연맹중심으로 청소년들의 자발적 의견과 행사 등의 내용들을 함께 진행 시킬 수 있는 홈페이지를 제작해 청소년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지역별 이슈와 내용은 이 권역별 진행 팀에게 모든 것을 양도하고 중앙의 연맹 청소년대표는 그 틀을 구성하는 것을 연맹 담당 간사와 유기적으로 협의합니다. 청소년 관련 사업들도 1개 정도는 이러한 대표성이 있는 청소년들과 협의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사업안도 함께 구상하여 장기적인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리더십 아카데미나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중점 프로그램을 개설해 선출되어진 청소년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속적인 집중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유기적 연대체로서의 성장가능성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우선 급한 것은 연맹 단위의 전국조직체의 대표성을 가질만한 청소년이 없다는 것입니다(정건희, 2004).

2004년에 제안했던 내용과 함께 연맹과 전국Y의 간사지도력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현재의 YMCA의 청소년연대의 틀이 조직되었습니다. 특히 연맹 스텝의 노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 한국YMCA가 지향하는 청소년상

청소년세대는 한국YMCA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소중한 지도력입니다. 먼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꿈꾸며 실현시키고자 우리 청소년들이 존재합니다. 그 희망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락하며 목적하신 그 생명 그대로를 인정하며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YMCA가 꿈꾸는 청소년은 바로 이런 청소년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며 나와 타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들입니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최선을 다해 활동하나 마음속은 세계를 넘어서 있는 청소년입니다. 이 나라를 넘어 지구촌의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평화를 이루고자 움직이는 청소년입니다.

우리의 목적문(Mission Statement)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로 시작됩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사명이자 이상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그대로 12명의 제자를 훈련하시고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원한이나 분노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연유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12명의 제자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 12명중 한명을 제외한 남은 제자들이 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윈한 그 소명을 우리 청소년들이 가져야 합니다. 노래를 하거나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목적문의 내용을 가슴 안에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자신 안의 물음을 끊임없이 행하며 살아가는 청소년이기를 바랍니다. 그 삶 자체로서 희망일 것입니다. 그 삶의 시간에 나만의 욕심과 자만과 명예가 아닌 근본 목적인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중한 지도력이 되기를 꿈꾸기를 바랍니다. 나중 자신의 직업이 운전을 하는 기사일지라도 환경미화인일지라도 그 안의 사명은 남다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생명에 따른 자유의지, 다양성 등 참으로 귀한 것들이 많이도 허락하셨습니다. 세계의 60억 인구 중 한 명 이라도 똑같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는 우상에 맞추어 타인들을 변화시키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YMCA의 이상적인 지도력을 꿈꾸며 훌륭한 선배지도력을 내 안에 갖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선배 지도력을 앞에 세우고 똑같이 맞추려 하는 것 또한 잘 못된 일입니다.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생명 그대로의 본질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행하며 지금 이순간의 우리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 사명의 중심에는 “생명과 평화”가 존재합니다.

그 생명 그대로 존중하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

바로 YMCA가 그리는 청소년상입니다(정건희, 2007).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마:5장9절]

5. 제안과 논의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교사 등 청소년과 관계있는 사업을 진행하는 다양한 계층의 지도력에게 청소년지도론, 청소년시민참여론, 사이버참여(특히 소셜미디어), 청소년인권 등에 대한 다양한 강의를 했습니다. 부족한 강의 자료도 꽤 준비되어 있고 미천하지만 소논문도 몇 편씩 작성했습니다. 청소년관련 강의는 부담이 조금은 덜 합니다. 그런데 신입직원 그것도 YMCA내에 다양한 직종에 포함되신 분들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은 후 고민이 많았습니다. 원고 마감일까지 무엇을 작성할지 끄적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단순히 청소년YMCA활동에 대해 설명 드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전문성을 가지신 분들이 참여하시는데 간략히 청소년사업만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 신입 직원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결국은 청소년운동에 대한 과정이나 전문적 이야기보다는 가능하면 YMCA안에서 청소년이야기를 간략히 하고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에 고민하다 보니 어설프나마 선배간사로서 후배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다음과 같은 제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읽어 보시고 또 다른 제안과 함께 토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첫째로 자신이 행하는 '운동'을 지속적이고도 세세하게 기록하며 공유해야 합니다. 내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알려 줍니다. 글쓰기 능력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에 행하는 사업이 어떻게 부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합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자신이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중요한 사례뿐만 아니라 사업의 과정을 공유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정보를 확산시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사업적 능력의 향상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온라인이 소통의 도구로 가장 원활하다는 판단입니다. 특히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적절히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격려와 지지, 그리고 비판 받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후 이러한 글을 묶어 출판해도 좋습니다. 최소한 실무지도력간에 진정성 있는 개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실무지도력 간에 끊임없는 개방과 상호 신뢰를 통한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타성과 함께 소진되지 않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진정 가치 있는 운동을 행하는 이들과의 교재와 서로간 지지, 격려, 만남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가는 이들을 동역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동역의식을 가진 이들과의 깊은 교재는 삶에서 커다란 복입니다. 방법은 다양합니다. 정기적인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작은 소모임을 조직해 지속적으로 관계할 수도 있습니다. 본이 되는 좋은 선배들과의 깊은 교재를 지속적으로 행하며 주기적으로 학습여행 등의 과정을 만들어 교재하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현재 유행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온라인 참여, 특히 소셜네트워크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긍정적 인간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깊은 관계를 체험했습니다. 좋은 이들과의 관계는 열정을 불어 넣어 주며, 평화롭게 만들어 줍니다.

셋째,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인간을 탐구하는 심오한 철학이나 역사에 기반을 둔 학습을 뜻하지 않습니다. 청소년과 어린이에 대한 좋은 책을 읽고 논의해도 좋습니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참여에 대한 간단한 논문을 읽어도 좋습니다. 독서와 함께 다양한 학습 그리고 이를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단순히 반복적인 일을 행하며 전문가입네 하는 처세는 우리가 행하는 일들의 과정에는 맞지 않습니다. 현재 행하는 일들과 함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경험적 학습과 독서라 여깁니다.

넷째, 조직의 이념과 미션, 그리고 우리가 이 조직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절대로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먹으면 변한다고 합니다. 청년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소명을 가지고 살았던 기억을 치기어린 것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철이 덜 들었다는 표현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동의하지 못합니다. 순수한 목적과 가치를 위해 삶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이러한 행위들이 치기어린 일이며, 철이 덜 들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순수한 동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우리 조직의 목적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반드시 행하는 모든 사업의 이유를 이곳에서 찾으며 정합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섯째, 시민운동은 시민이 주체이며 그들이 자주하게 해야 합니다. 운동은 뜻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혼자서 하는 일은 운동이 될 수 없습니다. 혼자서 행하지만 그 뜻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지며 그들이 주체로서 자주하게 행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장 심하게 망각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누가 주체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사람 귀한지 모르고 프로그램에 매몰되는 경우입니다. 운동은 사람이 행하며, 그 중심에는 실무지도력보다는 시민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주체로 세우고 자주하게 하며 지구촌 시민성을 길러 내는 것이 우리가 행해야 하는 가장 귀한 일임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와 함께 지속적인 조직사업을 행하게 됩니다.

위에서 제안 드린 내용 이외에 더 많은 좋은 논의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더 좋은 제안과 비판 부탁드립니다.

6. 마치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입니다. 외적 인물이 잘나서 또는 장점이나 돈, 지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쁨을 나눌 뿐 아니라 서러움, 번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것,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의 마음의 어두움까지 받아들이고 끝내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 만큼 함께 괴로워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바보가 바보들에게" 중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사랑은 아픔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사랑하면 아픕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아픔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아픔 뒤에는 더 큰 사랑과 평안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개방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들어내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열지 않고 어찌 상대만을 알려고 합니까? 이것은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일어나는 범죄자를 다루는 형사나 검사들이 하는 행위이거나 훔쳐보기에 가깝습니다. 상호간 수평적으로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한 개방은 어렵겠지만 가능하면 진실 되게 개방하고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개방성 안에서 사람간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강한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한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을 인정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영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도 비천해지고 문장도 비천해진다" 이외수 선생님의 글입니다. 여기에서의 허영은 지적허영을 뜻합니다. 허영이 가득 찬 글은 감동이 없습니다. 건조하고 가끔은 무슨 뜻을 전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무언가 더 잘 안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 뿐 그 안에 의미가 그리 크지 못합니다. 제 수준이 낮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몇 번을 읽어 보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도 있었습니다. 저의 지적 허영 때문에 만들어진 일들입니다. 제가 다른 이들보다 어려운 글을 읽고 있다는 지적 교만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지적교만, 지적허영을 철저히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 상호 소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 실무지도력들,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타 기관 실무자들과 다양한 소통이 진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람간의 관계 안에서 희망이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희망은 희망만으로 존재하는 헛된 망상이 아닙니다. 희망은 시간, 시간 지속적으로 구체화되어지는 '일'입니다. 긍정적 가치를 향해 낳아가는 매우 구체적이며 지속적인 사건입니다. 희망과 망상은 다릅니다. 구체적이며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금 이 순간 희망을 위해 행하는 일이 무엇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은 또 다른 면에서는 상실을 뜻합니다. 그 선택이 사람으로서 가치가 묻어나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위치에서의 상실이기는 하나, 제게는 희망의 선택인 셈입니다(정건희, 2011).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입이라는 그 새로움이 희망으로 지속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참고문헌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을유문화사.

김수환, 바보가 바보들에게. 산호와 진주

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 해냄출판사

정건희(2004), 한국YMCA 청소년운동 조직제안, 37차 한국YMCA전국대회 청소년포럼

정건희(2007), 청소년YMCA지침서, 한국YMCA전국연맹

정건희(2004), '한국YMCA 청소년운동 조직제안. 한국YMCA전국대회 청소년포럼에서의 발제글

건희(2010), 청소년민주시민양성소, 군산청소년수련관(YMCA) p. 44~45

정건희(2011), 희망이야기, 청소년자치사무소 홈페이지(http://www.youthauto.net/2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