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대학입시를 위한 과도한 경쟁에 놓여 있고, 명문대 합격을 위해서는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신뢰하는 지금의 현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우리는 무한경쟁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으면서 요즘 아이들은 인성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한다. 학교와 교육당국은 학생들에게 입시를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은 등한시한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서술한 한국일보의 ‘인생 없는 교실’의 기사를 바탕으로 인권과 시민교육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은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하는지의 여부? 임금체불시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는지? 현장실습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을 알고 있을까? 대체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한국 청소년은 시민으로서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노동자로서 무엇을 알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이나 훈련 없이 사회에 놓이게 된다. 이렇다 보니,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동자 권리, 생활법률, 안전기술 등에 관한 정보와 민주주의나 시민의식 등에 무지하다. 공교육은 공부 잘하는 아이, 문제를 잘 푸는 아이, 암기를 잘하는 아이들 교육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제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기술 교육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청소년 노동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로 인해 2018년부터 전국 모든 중고생이 최저임금, 노조활동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중학교는 사회, 고등학교는 통합사회, 특성화고는 성공적인 직업생활 교과서에 노동 3권, 노동권 침해 사례, 청소년 노동권 등에 대한 내용을 가르칠 예정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교육의 부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2015 개정교육과정’은 안전교육 강화를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온정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교과 내용도 사실은 실생활과 연계돼 있지만 지식 암기로만 접근해 그 실질적 맥락과 의미를 학생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개념과 내용을 프로젝트 중심으로, 체험과 토의를 통해 익혀나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정답찾기’에 그친다”고 말했다.
2015년에 자율형 공립고교에 진학한 정민성(18)군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외치며 학생의 인권에 대해 주장하였다. 그는 “교복 착용 시(카디건만 입어선 안 되고) 재킷을 꼭 입어야 한다든지, 두발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한 것 등의 문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교육 이전에 서로를 존중하는 게 우선 필요하다고요.” 2학년 때 부학생회장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선생님과 선도부가 학생을 존중하는 말을 쓰는 규정, 두발규제 없애기 등과 같은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학생부장 선생님이 공약의 절반 이상을 삭제해 버렸다. 그는 지난해 10월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였다.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쳤지만 학교는 그것과는 달리 완전한 비민주적 공간이었어요. 비합리적인 환경에서 제대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겠어요?”
이처럼 한국사회에서는 청소년이 실제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학습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천할 수 있는 학교의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 다른 나라의 청소년의 상황은 어떨까? 선진국에서 이루어지는 시민교육은 청소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정치, 경제, 노동 관련 문제나 법적 권리 등에 대해 자세히 배우며 일정한 견해, 주관, 권리의식을 갖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용역으로 교사들이 분석한 주요 외국의 학교 시민교육 교재와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프랑스와 영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민교육’ 과정을 의무화했다. 시민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부터 정부나 시민사회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학습하고, 주요한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실생활에서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으며, 도전을 어려워하고, 책임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시민, 자치력을 상실한 시민,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시민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85년에 중학교 필수교과로 시민교육을 지정했으며, 1998년부터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시민-법률-사회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2002년부터 시민성 교과목을 법정 필수교과목으로 지정하여 중고등학교에 도입하였으며 초등학교는 학교선택 과목으로 채택하도록 하였다. 이들 과목은 학생들이 시민으로써 누리고 이해해야 하는 권리와 책임을 비롯하여 사회의 체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에서 실시하는 시민교육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5~11세 교육과정에서는 의사소통의 기술, 아동의 권리, 청소년 시민을 위한 지역 민주주의, 뉴스소비의 기준 등을 가르친다. 아동 및 청소년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지역 위원회를 방문해 대표자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질문하는 과정도 이루어진다. 11~16세 교육과정에서는 범죄, 인권, 선거와 투표, 안전에 대한 인식, 노동세계의 권리와 책임 등을 다룬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교육방식이 개념 암기가 아니라 체험과 실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14~16세 청소년 대상 ‘노동 세계의 권리와 책임’ 수업에서는 청소년들이 가정, 학교, 사회에서 자녀이자 노동자로서 어떤 유급이나 무급 노동을 하고 있는지 작성하고, 자신의 기여도, 책임,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등 다양한 토론과 학습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수업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론 후 ‘고용 권리에 관한 검토목록’을 전 학급이 만들고 고용, 산업안전, 기회균등, 고용보호 관련법 등에서 자신이 어떤 보호를 받는지 조사하고 나아가 유럽연합 회원국 안과 밖에서 노동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등에 대한 학습까지 이루어진다. 또한 법 관련 수업도 단순히 법적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아직 투표권이 없는 어린 시민으로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가 있을 때 어떻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서 ‘아동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의 제품 불매운동을 펼친다면, 누구의 도움을 받거나 누구와 협력해 어느 절차로 어떤 행동까지를 할 때 정당할 수 있으며, 그 초래된 결과는 무엇일지 토의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미국은 ‘행동하는 시민’, ‘좋은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초등학교 사회과목부터 고등학교 역사과목까지 미국의 건국 역사 및 이념을 가르친다. 초기의 시민교육은 미국의 역사, 헌법, 정치 등 미국 사회에 대한 애국심과 일체감을 고취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그 이후에는 정치 구조와 참여, 인권, 관용,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 책임, 태도 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시민교육은 학교를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 밖에서도 여러 기관들이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진행하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이 학교와의 연계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을 비롯한 학교와 교사뿐 아니라 부모와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시민교육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 출처: 한국일보. “‘아동 노동력 착취 회사 제품 불매운동’ 선진국 학생들 토론하며 배워.” 2017. 11. 11. 재인용.
이처럼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시민교육은 공교육을 중심으로 시민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교과내용 자체도 암기위주의 학습이 아닌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 설명이 아닌 구체적인 예시와 질문을 통해서 토론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배우게 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외국의 경우는 토론 수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민교육에 대한 열망이 한국에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생활에서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등과 같이 학교혁신과 민주시민교육 등을 고민해온 교사들이 참여하여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책은 경기도교육청이 제작하여 2014년부터 활용되고 있으며, 여러 전문가들의 검토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다. 교과서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생들이 시민으로써 사고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인권, 노동, 평등, 다양성, 평화, 연대, 민주주의, 미디어, 선거, 참여 등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교과서는 학교와 교사가 원할 경우, 기존 사회과 교육과정의 보조교재나 동아리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선택교과로 편성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주시민 교과서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기 안산시 시곡중학교 학생들을 만나보자. 이 학교는 1학년 사회과 시간을 활용해 매달 한 차례 2시간씩 학생토론교실을 실시한다. 이날 토의주제는 ‘뉴스 소비자로서 10대는 미디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었다. 모둠 별로 오늘 게재된 뉴스 중 인상적인 것 5가지와 그 이유를 써내라는 과제에 연예나 오락 뉴스가 주를 이룬 반면에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둘러싼 논쟁과 청년 고독사를 선정한 청소년도 있었다. 염경미 교사는 “언뜻 재미는 없어 보이지만, 여러분의 삶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뉴스는 어느 쪽이겠어요? 어떤 뉴스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청소년들은 학생 인권과 상벌점제, 각종 범죄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기사 등을 언급하였다. 민주시민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미디어로 세상을 볼 때 만드는 사람의 입장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나시문 군)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많이 보는 뉴스와 정말 필요로 하는 뉴스가 달라서, 양쪽을 골고루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다은 양) “다루는 주제는 같아도 매체마다 이해하고 설명하는 관점은 다 다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조재문 군) 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의 시민역량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토론 및 체험활동이 필요하다고 염교사는 언급하였다. 특히 수업, 지역사회와 실제로 만나는 현장 학습, 지역 시민사회와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올해 3~11월에 ‘좌충우돌 사회참여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글과 말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체험하는 교육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도록 하였다. 이 동아리활동은 단원고 기억교실 추모 방문, 지역 시민단체를 방문해 해나가는 일의 방식과 철학에 대한 질의와 토론, 민주항쟁 유적지 답사 등을 실시하였다.
경기 수원시 삼일상고의 허진만 교사(민주시민 교과서 대표저자)는 ‘노동과 경제’ 수업에서 이루어진 ‘계약서 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하였다. “그 어느 수업보다도 사회시간은 세상에 나가 실제 상황을 맞이할 아이들이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학생들은 이런 걸 배우지 못한 채 졸업하고, 어른이 돼 자취방을 구할 때가 돼서야 처음으로 계약서라는 걸 써보며 당황하죠. 그러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일수당, 야간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이 수업에서 청소년들은 4~6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아르바이트생과 고용주 역할을 맡아 ‘정의로운 근로계약서’ 쓰기를 하면서 근로계약서의 필요성,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허 교사는 “결국 학생들을 객관식 문항으로 평가하는 현실 속에서는 전면적으로 이런 주제를 다루는 토론이나 체험 교육을 해나가기 어렵지만, 조금씩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암기 위주 교육에 균열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그래야 아이들이 스스로 언제 보호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며,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아는 상태로 학교 밖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학교에서의 실제적인 교육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학교에서는 민주시민에 관련된 교육을 할 때 개념 설명을 중심으로 한 암기위주의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렇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청소년들이 배운 지식을 활용하거나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들은 사회에 나와서 예기치 못한 어려운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느끼면서 성장하게 된다.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준비 없이 경험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이들을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 교육이며 성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글쓴이: 장여옥
<참고한 자료>
한국일보. [인생 없는 교실] “꼭 알아야 할 것은 안 가르치는 학교.” 2017. 11. 11. http://www.hankookilbo.com/v/ca0deebfcd474b95a7b9ae087fca9f2c
한국일보. [인생 없는 교실] “교사가 만든 ‘민주시민’ 교과서로 가르치니….” 2017. 11. 11. http://www.hankookilbo.com/v/b426c5512eeb46808d6558a75d7a1bb6
한국일보. [인생 없는 교실] “죽은 교육 아닌 내가 선택한 걸 배우고파.” 2017. 11. 11. http://www.hankookilbo.com/v/1c69e0fb1ac64116890cd14269a901fc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해외동향: 미국 청소년의 민주시민 교육. 2017. 7. 6. http://www.nypi.re.kr/brdartcl/boardarticleView.do?menu_nix=iBwuo1rV&brd_id=BDIDX_zewPqUx5V8ZThtw5o5fm99&cont_idx=158&edomweivg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