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제주도에 소재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이민호군(18)이 그의 18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숨졌다. 현장실습은 고등학생 3학년 2학기에 6개월가량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군은 제주시의 한 음료 제조업체 ㅈ공장에서 압착기에 눌려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특성화고 실습생이 또 참변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작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특성화고 졸업생이 사망하였으며, 올해 1월에는 전주시 유플러스 고객센터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콜수를 다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이와 같은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청소년들이 사고를 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이군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모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학비와 기숙사비가 모두 무료인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하였다. 이군은 7월 25일부터 일을 시작하였으며 야근수당 등을 포함해 매달 약 250만원의 월급을 받았으며, 이 중 100만원은 매달 적금을 하고 100만원은 부모에게 드렸다. 사고가 발생한 날, 이군은 생수병을 포장하는 라인에서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군은 압축포장 기기가 작동하지 않자 이를 확인하러 기계에 들어갔다가 나오려는 순간 다시 작동되는 기계를 보지 못하고 압착기에 몸 일부가 눌리고 말았다. 이군은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장시간의 노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와 사업체 간 작성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표준협약서)는 현장실습생의 노동시간을 1일 7시간 그리고 실습생 동의하에 연장 근무 시 1일 1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군의 근무일지를 보면 현장실습생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군은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11~12시간 이상 근무를 했으며, 토요일에는 오전 8시30분~오후 7시까지 근무하였다.
연이어 발생하는 현장실습생의 사고를 목격하면서 실습생을 교육 대상이 아닌 ‘값싼 노동자’로 여기고 있는 정부와 기업, 학교의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은 저임금의 위험한 일자리를 10대 청소년으로 채우고 있으면서 이들에 대한 안전 관리에 소홀한 태도를 보이고, 정부는 특성화고등학교의 취업률로 학교를 평가해오면서 현장에 나가 있는 청소년들을 관리 감독하지 않고 있으며, 학교는 학생의 인권과 안전은 무시하고 취업률 제고를 위한 조기 취업과 전공과 무관한 현장실습 진행하는 등 ‘트라이앵글 구조’가 실습생을 위험한 환경에 놓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매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 약 6만여 명이 ‘산업체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들이 투입되는 곳은 임금이 낮아 일반 노동자들이 꺼리는 열악한 환경인 곳이 많다. 따라서 청소년은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훨씬 높다. 기업은 “저임금의 충성도 높은 10대 인력을 선점하고자 현장실습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고3을 산업체 파견 보내는 방식의 현장실습제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은 말했다. 특히 노동자를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현장실습생을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맞지 않는 현장실습과 작업장의 노동착취 등으로 인해 실습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업능력평가원에 따르면 학생 30% 이상이 현장실습을 그만두는 학교가 13%이며, 학생의 10~30%가 현장실습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교가 38%라고 하였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현장실습제도에 관한 문제점을 검토하여 지난 8월말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현장실습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기존의 6개월 ‘근로’ 중심으로 행해지던 현장실습을 1개월 안팎의 ‘학습’중심으로 바꾸며, 실습생의 신분도 ‘학생 및 근로자’에서 ‘학생’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법적 근거가 되는 직업교육훈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을 의무화했던 기존 조항을 삭제하여 무리한 현장실습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줄이고,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은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 출처: 한겨레신문. “‘부려먹기 쉬운’ 10대들의 현장실습···‘철학이 있는’ 직업교육 절실.” 2017. 11. 7. 재인용.
정부의 대응책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현장실습제도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군의 사고 이후 구성된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 노동인권실현대책회의(대책회의)’는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인데,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여전히 미흡하다. 초·중등교육법에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임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정부가 발표한(학습중심의 현장실습) 계획과 현실이 달라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즉 직업교육훈련법을 일부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정부가 원하는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종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자체가 교육에 초점을 맞춘 법이 아니라 ‘산업인력의 양성’이나 ‘국가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법 조항 몇 개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변호사는 “학생들이 실습하는 산업체 역시 저임금 노동력 확보의 수단으로 현장실습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법 개정만으로 현장실습이 근로 아닌 교육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실습생을 학생 신분으로 규정할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므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현재 학생들은 실습 나갈 때 진짜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고 회사들도 실습생을 받을 때 실제 노동을 시킨다. 현장실습 중인 실습생의 신분이 학생으로만 규정되면 실습 도중 산재 등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 9월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 개선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통해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에 관한 실행계획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이 실습생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이유는 임금 성격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현장실습 비용을 기업에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부가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을 강조해도 기업이 실습생에게 실습지원비 등 돈을 주는 방식은 실습생에게 노동자처럼 일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열정페이’를 강요하게 된다고 하였다. 즉, 정부가 예산을 투여하여 기업에 실습 교육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기업에게는 학생을 노동자가 아닌 교육을 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도록 하면 학습 중심 현장실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럴 경우 정부의 예산이 수만 명의 직업계고 학생이 참여하는 현장실습 비용으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홍민식 교육부 평생직업교육국장은 “현장실습이 학습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재정이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에 참여할 기업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에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현장실습에 대한 부실한 관리 및 감독이 사고의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철저한 관리 및 감독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현장실습의 폐지는 특성화고 경쟁력 약화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현장실습 기간을 줄인 결과 숙련도가 떨어지고 취업률이 하락하면 특성화고 자체를 운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취업률이 떨어지면 특성화고에 갈 이유가 없어지고 결국 대학 입시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학생 안전을 고려해 실습기간 조정이 필요하다면 취업률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추가적인 별도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11월 11일에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인 학생들이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하고자 단체를 결성하였다. 특성화고등학교 권리 연합회(연합회)는 특성화고 학생 10만 권리선언을 낭독하고 거리 선언을 한 뒤 창립식을 가진다. 권리선언은 “우리는 특성화고 학생·출신이라는 이유로 성별·나이·학력 차이를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당하지 않아야 하며 부당한 사회적 편견을 바꿀 권리가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연합회에 따르면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로 특성화고 재학생·졸업생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하였다.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고민을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2017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68.9%로 이 수치는 100명 중 31명이 고교 졸업 후 대학이 아닌 사회 진출을 택했다는 것이다. 통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교생의 취업률은 2011년 23.3%에서 2017년 34.7%로 크게 증가하였다. 비싼 등록금을 들여서 대학을 졸업하여도 청년 실업 등 대졸자의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대학을 택하는 대신에 취업을 원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추세인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의 빠른 흐름에 비해서 직업교육 현장은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직업교육은 철학이 중요한데, 얼마나 취업을 많이 했는지 용접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 양적 지표와 기능적인 숙련만 강조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일자리가 생겨날지, 미래 세대는 어떤 노동 형태를 맞이하게 될지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직업교육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즉 양적인 노력만이 아닌 질적으로 우수한 직업 및 노동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출처: 한겨레. “‘부려먹기 쉬운’ 10대들의 현장실습···‘철학이 있는’ 직업교육 절실.” 2017. 11. 7. 재인용.
고등학생의 현장실습 사고는 매년 발생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지만 안전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열악한 노동 현장에 놓여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교의 무관심 속에서 학생들은 매년 사고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대책이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학습을 나가는 학생들은 우리의 아이들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실습을 통해서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때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참고한 자료>
경향신문. “‘차별, 무시 직접 바꾸자’ 특성화고 학생들의 조직된 힘.” 2017. 11.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041702001&code=940401
뉴시스.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 공방..‘안전위협’ vs ‘숙련도 하락.’ 2017. 12. 4.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204_0000166415
한겨레. “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제주 현장실습생의 죽음.” 2017. 11. 2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0112.html
한겨레. “10대 현장실습생들 ‘잔혹사’, 기업·정부·학교가 키웠다.” 2017. 11. 22.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20113.html
한겨레. “이군 사망 부른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폐지 성공하려면….” 2017. 12. 4.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21868.html
한겨레신문. “‘부려먹기 쉬운’ 10대들의 현장실습…‘철학이 있는’ 직업교육 절실.” 2017. 11. 7.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17784.html
시사IN. "죽음이 도사린 현장실습 제도." 2017. 12. 4.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