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는, 신정아씨가 집필한 "4001"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책에 등장한 정운찬 전 장관에 대한 이야기 일색이었다.
신정아라는 이름은 이미 다분히 선정적이 되어서
마치 그 이름은 인격이나 생활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마냥
대중의 관음 욕구를 해소해 주는 하수구 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난 이 순간 그녀가 정말정말정말 부럽다!!!
나는 40년 넘는 인생 동안
나를 자기 옆에 잡아두기 위해
내게 충분히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제공하겠다고
유혹하는 "남자"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있었다면 나는 덥석 물었을 것이다... ㅋㅋㅋ)
나는 4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이러 저러하게 얼기 설기 엮어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스토리가 전혀, 한 줄도 없다!!!(그녀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돈도 벌겠지.. ㅎㅎ)
이 대목에서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강한 기억이 몇가지 있다.
기억 1.
대학교 2학년때 처음 간 농활 기간 내내
나는 밭일이며 담배잎 따기 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만 하는 동안
선배들의 애인들이었던 내 동기 2인은 담배잎 엮기 라든가 식사 준비처럼
정말 쉽고 편한 일만 했었다.
당시 나는 내친구들이 그저그렇게 심심해 보이기만 하는 그 선배들을 사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 두 커플이 모두 결혼했지만.. 아직도...)
기억2.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 되고 부서장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는 후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그 이유는 그녀가 예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부서장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내 능력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그때만 해도 난 예쁜 여자보다 능력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기억3.
여자라서 총회장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덩치가 큰 남자들이 길을 막았다..
그 남자들이 말하길
여자답게 순종적으로 남자들이 결정해줄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여자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억4.
세세하게 기록할수는 없지만
이제는... 연애도, 불륜도, one night standing 까지도
어떤 경우에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나의 경험과 내 동기들과 내후배들의 경험들이
부끄럽게 내 마음에 떠오른다...
결국...
나는.. 남자들한테 능력이나 지성으로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음을 평생동안 반복해왔다는 것을
오늘 신정아씨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더러 있었고
인정받으려는 나의 욕심이 오히려 추악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고
"넌 싸가지 없고 성격이 드러워서"라고 말해도
뭐 딱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차라리 신정아씨처럼 내가 여자라는 것(인간이 아니라)을 일찍 인정하고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열정이나 지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외모와 여자다움을 가꾸고 적절하게 전시하면서 살았다면
나는 (여자임에도) 주류가 되었을 것이다...
선배 한 사람이 꿈 얘기를 했다.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여자 선배 하나가 수고했다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빨간 핸드백을 주었는데
나의 선배는 "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어요" 라며
그 핸드백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꿈속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현실에서도
"난 할일을 했을 뿐이고 별로 고생하지 않았어요"라면서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이 나이에... 나 역시 빨간 핸드백을 굳이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그 빨간 핸드백은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 손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는 그 유리천장을 깨고...
또 누군가는 빨간 핸드백을 당당하게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신정아 같은 "여자"가 더 이상 출현하지 않을 것이며
신정아 같은 "인간"이 다시 출현한다 하더라도
거리낌 없이 낄낄거리고 개인에 국한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신정아씨는(더 많이 성공하고 싶어서) 그 유리천정을 제거하기 위해
"학력위조"라는 덜 추악하고 덜 피해를 주며 덜 파괴적인...깜찍한 거짓말을 했고
자신에게 유리천정을 제공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본성을 역이용해서 남자들에게 어필했고...
능력이나 지성은 위조할 망정 여성으로 보이기 위한 시도는 번번히 성공하면서...
남자들이 기꺼이 제공해 주는 빨간핸드백을 받았다...
나는 그녀의 성공욕망이...
적어도 그녀의 이야기가 부조리한 남성권력의 증거라는 것을 무시하고
오직 타인의 사생활(주로 성생활)에 더 관심 가지는
무뇌아적 관습이나 분위기 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나는 내 후배들이나 신정아씨의 후배들은
선배의 애인이 아니더라도...
미스코리아 외모가 아니더라도...
성격이 여성답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더라도...
정치적인 불륜과 연애와 one night standing에 몸을 던지지 않더라도...
그저 그녀들이 가진 순수한 열정과 빛나는 지성과
단련된 전문성으로...
남자에게서나 여자에게서나...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뭐.. 어울리지 않는 손에 들린 빨간 핸드백을 내놓으라고 하느니...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고 더 그럴듯한 빨간 핸드백을 만드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아, 자기들것이 낡았다고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것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르겠구나..)